실전 논술 문제

입력 2002-12-20 14:30:00

문) 지금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자유주의 이념과 공동체의 요구 사이의 대립은 더욱 첨예해지고, 그것은 우리 삶의 환경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음 제시문을 읽고 세계화 시대에 나타나는 자유주의의 현실적인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을 근거로 바람직한 대안을 공동체적삶의 질서의 필요성과 관련시켜 논술하시오. (띄어쓰기 포함 1400±100자)

[가] 서구 국가들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크게 쇠퇴했다. 오랫동안 '모든 것이 정치'이던 시기 이후 서구 국가들은 이제 '모든 것이 경제'인 시대를 살고 있다.국제 경쟁력, 무역 수지의 균형, 강력한 통화, 신기술 개발 능력 등이 정치적 관리의 목표가 된 것이다. (중략)

프랑스 혁명 이후 계속 이야기되었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자유주의 사회, 다시 말해 내생적(內生的) 발전의 사회와 동일시하게 되면 시민 사회의 지배자들 특히돈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 사회를 지배하는 것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며, 자유주의 사회가 통합의 사회이면서 동시에 배제의 사회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된다. (중략)

세계 경제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이동할수록 안에 들어간 사람들과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 사이의 분리는 점점 더 극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종종 반민중적인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추진되는 세계 시장에의 개방은 민주주의의 복귀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동시에 경제적 이중 구조를 심화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 군부 독재가 승리하고 민족 민중 정권이 쇠퇴한 뒤 보호주의 경제 정책은 세계시장 내의 비교 우위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경제 정책은 자유 선거가 복귀되었을 때 지속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배한 주변부 국가의 종속성과 경제의 비공식 부문의 성장이라는 경향이 그만큼 역전된 것은 아니다.빈곤층은 더욱 빈곤하게 되었고 교사, 공무원 등 전통적인 중간 계급은 자신들의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다른 한편 부유층은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였고 외채로 공급된 자본을 대량으로 수출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사회적 빚'이라고 불리는 불평등의 증가는 민주화의 한계를 보여 주었다.

현실적 권력이 다수의 빈곤층을 희생시키면서 소수 부유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때 누가 그것을 위해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겠는가? 그러한 나라들에서 통합된 자와 배제된 자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커진다.

그것은 통합된 자가 80%인 곳이나, 사하라 사막 주변의 아프리카나 안데스 산맥 주변의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처럼 통합된 자가 20%나 40%인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내생적 발전이민주주의의 가장 튼튼한 기초임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순수하게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 개념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알랭 투렌, '현대성 비판'에서

[나] 완벽한 시장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로 향하려는 움직임은 금융 규제 완화 정책으로 가능해졌으며, 변환 작용을 통해 완성된다. 분명히 말해 두어야 할 것은, 변환 작용이란 다름 아닌 일련의 정치적 조치들에 의한 전면적 파괴 작용이라는 점이다. 최근의 것으로는 다자간 투자 협정(MAI)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모든 민족 국가에 대해 외국 기업과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려는 정책이다.

이러한 모든 정치적 조치들이 '순수하고 완벽한 시장 논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모든 공동체적 집단 구조들을 문제삼고 있다. 가령, 국가 운신의 폭이 점점 더 줄고 있으며, 노동자 집단의 구성원들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급여나 직업이 개인적으로 차별화, 즉 원자화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노동 조합, 권익 단체, 협동 조합 등이 위협받고 있으며, 심지어 가족마저도 연령층에 따른 시장 형성으로 인해 각 구성원의 소비에 대한 통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중략)

위계 질서의 모든 층위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이루어지고, 세계는 다윈적으로 재구성(a Darwinian world)되며, 그런 것들이 실천적으로 제도화된다.수많은 사람들이 불안, 고통, 스트레스로 신음하는 세계는 불안과 생존 위협으로 인해 생겨난 취약해진 기제들의 도움으로만 존재 가능하다.

실업의 공포에 시달리며,취약한 노동 구조에 길들여진 예비 노동자들의 삶이 만들어 내는 취약한 기제들의 허약성은 위계 질서의 모든 계층에서, 심지어 높은 자리에 있는 중견 간부에게서도 드러나게 된다.

자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경제 질서의 궁극적인 바탕은 해고와 실업으로 취약해진 노동 구조와 실업에 대한 공포가 만연한 실업의 구조적인 폭력이다. 대중적인 현상인 대량 예비 실업자들의 존재가 개인주의적 미시 경제학 모델의 '조화로운' 작동 조건이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노동 계약에 그대로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론 노동 계약은 '계약 이론'에 의해 교묘하게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동시에 띠게 된다.) 기업은 어느 때보다도 신뢰, 협동, 충성 등의 기업 문화를 떠들고 있으나 더 이상 모든 노동 시간을 장기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예컨대 고용의 4분의 3은 계약직이고, 노동 구조는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으며, 어떤 제약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의 유토피아는 모종의 끔찍한 기계와 같은 현실 속에서 점점 더 구현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옥과 같은 현실의 필요성은 지배자 자신에게도 더 강하게 부과되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 '신자유주의의 본질'에서

[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이 여러 가지 이익-개인적이거나 소집단적인 이익이 조정되는 공간이다. 여기에서 공정성의 원칙은 모든 사람과 이해 관계가 민주적으로 대표될 것을 요구한다. 소규모의 공동체에서 이것은 그렇게 어려운 타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알맞은 공동체의 정치 체제는 적어도 기본적으로 공동체의 성원 모든 사람이 동일한 관리와 의무를 갖는 직접 민주 체제일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민주 체제는 개인주의적 이해 관계의 갈등이 투쟁적으로 조정되는 기구에 그치지 아니할 것으로생각된다.

소규모의 공동체는 구체적 인간 관계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적나라한 이익의 동기만이 최종적 질서의 원리가 되지는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구체적 인간 관계에 따르게 마련인 모든 인간적 고려가 보이게, 보이지 않게 작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삶과 행복에 대한 권리에 근거한 동등권을 인정할 것이고,다른 한편으로 개인적 취향과 재능과 사회적 분업에 따라서 일어나는 차이가 상호 보완 관계에 있음을 시인하면서, 궁극적으로 동등하면서 차이 있는 공동체 성원들의 유기적일체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집단의 민주적 삶은 사회 평화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극히 실용적인 방편이지만, 그것은 또한 중요한 교육적 문화적 의의를 갖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의 삶의 역정에 새로운초개인적 차원을 부여하고 그것을 고양하고 풍부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착잡한 이해 관계의 조정 기구로서의 민주적 사회 생활은 개체적 사항들의 정합성의 원리로서의 이성 또는합리성의 원리를 낳는다. 이것은 내면화되어 우리의 이성적 자각의 한 계기가 된다.

여기에서의 이성은 단순히 사실적 필연성에의 승복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공동체 안의 생활이 유기적 일체성의 깨우침이 될 때, 그것은 이 이성에 고양된 내용을 부여한다.

그것은 외적인 필연성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내적 진리, 즉 인간 유대감의 진리의 수락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체적 관점의 제약으로부터 보편적 인간성의 관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공동체의 정치 원리도 이렇게 하여 개인적 이익을넘어선 또는 공정한 분배마저도 넘어선 인간 생존의 진리에 입각한 것이 되고, 공동체의 인간 관계는 권리의 평등성이 아니라 봉사와 사랑 또는 희생에 의하여 특징지어질 수 있게 된다.

-김우창,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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