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풍'에 꺾인 '대쪽'… 이회창

입력 2002-12-20 00:00:00

92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감사원장이 된 이회창의 꿈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는 대법원장이 되길 원했다. 80년대 초 그를 대법관 후보로 박철언 당시 법무비서관에게 소개한 손진곤 변호사는 이 후보에 대해 "정치인으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법관 가운데는 대법원장 감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의 희망대로 임기 6년의 대법원장을 했을 경우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93년초 김영삼(YS) 대통령 당선자에 의해 감사원장으로 발탁된 이회창은 오전 8시40분에 출근해 오후 6시5분에 퇴근할 정도로 칼 같은 사람이었다. 외부 사람과의 만남은 피했다. 그의 이런 결벽증은 정치권에 들어오고서도 계속됐다.

97년 대선 당시 이 후보는 거의 서울에서 잠을 잤다. 일정이 바쁜데도 굳이 귀가를 고집해 측근들의 발을 구르게 했다. YS는 12월 이회창을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사사건건 청와대와 총리실이 충돌하는 일이 일어났다. 결국 이회창은 127일 만에 물러났다. 총리직 이임은 이 후보에게서 공직의 끝이 아니었다. 그는 총리직을 떠난 뒤 인기가 급상승, 급기야 대중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이 때문에 이회창은 정치권의 영입 대상 1호가 됐다. 95년 지방선거 때 여야 모두로부터 구애를 받는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최측근인 권노갑 전 의원과의 접촉도 있었다.

그러나 이회창은 96년 1월 YS의 요청을 받아들여 신한국당 입당을 결정한다. 96년 1월 신한국당 15대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비로소 이회창의 정치역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회창이 정치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회창은 정치에 몸담은 지 6년이 지난 2001년 5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분장하고 화장하는 게 정치 같다"며 "법관 쪽에서 보면 완전히 타락한 거지"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이회창은 2000년 16대 총선 공천에서 지금까지 정치인 이회창을 있게 만든 1등공신 김윤환을 비롯 이기택.신상우 등 당내 중진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그는 '이회창식 리더십'을 구축했다는 평가와 함께 "이회창은 냉혹하고 무섭다"는 세간의 비평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그와 경합했던 이인제.이한동.이수성씨가 결국 당을 떠나자 포용력 부족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원내 제 1당의 총재가 됐지만 그의 험로는 계속됐다. 김대중 정부 들어 세풍(稅風.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조달 혐의).총풍(銃風.휴전선 긴장조성을 위해 북한 측에 무력도발을 요청한 혐의).안풍(安風.15대 총선에서 안기부 자금의 신한국당 유입 혐의)으로 정치적 곤경에 처했다.

이 과정을 거쳐 그는 '반(反)DJ세력의 구심점'으로서의 위치를 굳혔고 가장 강력한 차기 대통령감으로서 확고부동의 인물로 평가됐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사실상의 임기 6~7년의 대통령이라는 소리마저 들었다. 주변에서 너무 자만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지만 '반 DJ'라는 전가의 보도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고 그의 정치적 위치도 점점 굳어지는 듯했다.

또 야당 대표와 총재를 5년간 하면서 이회창은 정치인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5년간 많은 것을 배웠다"고 토로했다. 지난 5월10일 잠실체육관에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을 마치고는 단상에서 업드려 큰 절을 했다. 과거 이회창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반 DJ 정서라는 최대의 무기가 효과를 너무 발휘한 탓인지 이번 대선에서도 너무 믿은 것이 화근이 됐다. 2000년 총선과 올해 지방선거 그리고 각종 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약발이 떨어진 부패정권 심판이라는 반 DJ 구호는 더이상 선거를 좌우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여기에 매달렸고 결국국민적인 참여와 변화의 갈망을 읽어내지 못하고 두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이번 선거마저 그르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일 국민의 선택에 승복했다. 그리고 당선자에게 축하를 했다.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노무현 지지철회가 승복이냐 불복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와중에 나온 이회창의 승복은 그를 '더욱 아름다운 패자'로 만들었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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