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자락 가산산성에 올랐다. 허물어진 성벽 사이로 말갛게 몸을 드러낸 나목군들이 목책을 이룬다. 바람에 날아든 황토 빛 낙엽더미와 얼어붙은 설빙이 마치 토성을 쌓은듯 하다.
산성에 오를 때면 나는 산자수려한 여느 산길과 다른 전율을 느낀다. 거기에선 오늘 아닌 그 옛날 이땅을 지키던 기품 당당한 대장부를 만나게 되고 명줄 질긴 초민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신라와 백제의 접전지 부산성, 왜구의 북진을 차단하려 했던 가산성, 정유재란을 예견하고 축성한 화산성…. 크든 작든 그 산성들은 모두 영남을 지켜온 호국의 현장들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이남 땅을 사수코자 피흘려 싸운 유학산전투의 현장인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비롯하여 신녕지구 전투기념비, 영천의 전승기념비 등은 피할 수 없었던 우리 민족수난사의 흔적들을 기록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민족이나 국가가 어디 그리 흔하던가. 그러기에 세계곳곳의 산성이나 전적지는 민군이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전쟁문화지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현대로 되돌려 유용성 있는 사회문화적 자원으로 재활용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군은 안보적 기능외에 그 사회적 기능으로서 국토건설과 재난복구 등으로 국민의 찬사를 받아왔다면 앞으로는 여기에 더하여 땅굴 현장체험, 병영 극기훈련, 지역사회와 연계한 이벤트 등 문화 지향적인 역할이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군의 사회적 역할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국방고객에게 신뢰와 만족을 더해주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생과 공존을 대전제로 하여 닫힘으로부터 열림의 구도로, 절대적 가치로부터 상대적 가치구도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병영문화에 대해서도 민과 군은 공유지대로 서로 이해하고 함께 아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이었듯이.
김정식 육군3사관학교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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