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하수시설

입력 2002-12-18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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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부엌 시설 중 서양에 비해 늦게 발달한 것을 꼽으라면 수도와 개숫물이 빠지는 하수시설일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도 하수시설이 나타나고 로마에서는 상하수도 시설이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급.배수 시설이 들어선 것은 공업화 이후였다.

건축학자들은 우리나라에 하수시설이 늦은 것은 수맥이 많고 지하수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디나 수맥을 잡아 땅을 파면 물이 나오기 때문에 성가시게체계적인 급수시설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서양은 물이 나는 곳이 드물었고 국가 차원에서 토목공사를 통해 집집마다 물을 공급하면서 급배수 시설이 자연스럽게발달할 수 있었다.

하수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부엌에서 나오는 폐수의 주종은 쌀뜨물. 쌀뜨물은 쇠죽을 끓일 때 쓰거나 부엌 옆에 딸린 채마밭에 뿌려 재활용했다.시골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물을 재활용하는 집이 많다.

체계적인 하수시설의 등장은 도시화와 관련이 있다. 더 이상 집에 마당이나 채마밭이 없고 쇠죽을 끓일 필요가 없어지면서 한번 쓴 물은 고스란히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한 영문학자는 "영국 신사들이 길을 걸을 때 여성을 안쪽에 걷게 하고 자신은 마차나 차가 다니는 길 쪽에서 걸었던 것은 당시 영국의 하수도 시설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하수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시절 영국의 가정에서는 오물을 길 쪽으로 쏟아내기 일쑤였다. 잘 차려입은 옷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던 영국신사들은 여성을 안쪽에 걷게 함으로써 집안에서 획 쏟아내는 오물의 방패막이로 썼다는 것이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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