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7시 대구를 출발해 울산의 이회창 후보 기자회견이 열리는 뉴올림피아 호텔로 향했지만, 초행길이라 신호를 몇 번 놓치고 헤매다가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이미 이회창 후보는 회견장을 나오고 있었고 회견장에는 '북한 핵문제 반드시 해결해 내겠습니다'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만 덩그러니 달려 있었다.
막 기사 송고를 마친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대선 후보들의 경우 갑자기 일정이 바뀌거나 오늘처럼 긴급한 기자회견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했다. 그나마 이후보는 일정을 잘 지키는 편이란다.
이 후보의 다음 일정지인 울주군의 남창시장으로 향했다. 시골 분위기가 제법 풍기는 시장의 분위기는 이미 고조돼 있었다. 팔순의 노파가 이 후보의 손을 잡고 연설장 연단아래까지 따라오기도 하였고, 화사한 얼굴의 20, 30대 여성들이 이 후보의 주위를 둘러싸고 연호하고 있었다. 이 후보의 시골 장터 연설엔 유머도 섞어가며 재미있고 쉽게 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그러나 재미는 오히려 연단 아래에 있었다. 몇 명의 수행원들이 배추와 무를 한아름씩 사고 있었다. 아마도 시장 상인들에게 불편을 줬다는 생각에 그런 모양이었다. 이후보의 연설내용은 현정부의 부정부패와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또한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경험과 안정감 부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비판의 강도는 강했지만 인신공격성 발언이나 영남지역을 의식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다음 유세장인 현대백화점 앞에서의 연설내용도 거의 대동소이했다. 아마 일정한 양식을 정하고 하는 모양이다. 11시 정각에 현대백화점 앞에 도착하니 이 후보보다 먼저 온 연예인들이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울산 지역의 마지막 연설장인 현대백화점은 현재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동시에 진행되는 중구의 한복판이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기자들에게 들으니 현재 한나라당 후보와 국민통합21의 후보가 박빙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이런 평가는 아침에 탄 택시기사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선거도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의 행보에 따라 울산 지역의 표심이 움직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세간의 평가를 의식한 듯 이 후보의 연설은 울산 시민들을 한껏 추켜세우고 있었다. 울산이 산업화시기에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미래의 한국을 이끌고 나갈 중심도시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덧붙여 도시의 흥망성쇠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가를 화두로 꺼내면서 민주당 노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대목에서 청중들 사이에서 큰 박수가 터졌다. 이 박수는 진짜로 연출되지 않은 박수인 것 같았다.
이 후보는 연설을 마치고 인근의 중앙시장을 찾았다. 이 후보는 따라다니는 기자들이 지칠만큼의 강행군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시장 상인들의 손을 잡고 어려운 경제상황을 걱정하고 상인들을 격려했다. 표를 달라고 하는 말보다는 훨씬 정감어린 접근으로 보였다.
이 후보가 악수를 하면서 지나간 시장 바닥에서는 한 바탕 토론이 벌어졌다.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는 "나는 원래 찍던 그대로 찍으려고 하는데, 아마 우리 아들은 젊은 사람 찍지 싶다"라고 말했다. 주위의 상인들도 이 말에 동조했다. 이번 대선이 세대간 대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 후보는 중앙시장 방문을 끝으로 울산에서의 오전 일정을 마쳤다. 이 후보의 유세는 상대후보에 대한 공격도 나름대로 논리적이었으며, 과거와 같은 색깔론 공세나 망국적인 지역감정 자극 발언은 전혀 없었다.
사실 지난 10월 영남대에서 있었던 민주당 노후보의 연설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도 거친 표현과 상대를 비방하는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방송은 어떻게 찾았는지 그런 장면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언론의 이러한 선정적 태도가 정치불신을 조장하고 정치 무관심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 본 우리 정치는 분명히 많이 나아져 있었다. 모 정치인이 TV 광고를 인용, '많이 욕한 당신, 찍어라!'라고 선거참여를 권하는 장면을 봤다. 비판 속에서 우리 정치가 이 만큼이라도 발전했고, 이제 국민의 참여가 이를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몸은 피곤했지만 희망을 본 즐거운 하루였다.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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