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 개발과 보존이 한데 어우러진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외세의 침략에 항거했던 선비들의 꼿꼿한 지조가 남아있는 마을은 높은 언덕위에 터를 잡아 수백년을 이어 오면서도 고고한 기풍이 그대로다.
허물어져 기운 흙담장과 깨진 기왓장에서는 뒤안길 속 전통의 모습을, 굴착기 굉음과 새로 단장될 황톳길에서는 전통의 현대적 되살림을 느낄 수 있었다.
재령 이씨 영해파 후손들이 360여년간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터전. 이곳을 찾으려면 안동에서 영덕방면 국도 34호선을 타고 청송군 진보면을 지나 영양으로 난 국도 31호선으로 옮겨 타야 한다. 월전검문소 삼거리에서 1㎞도 채 못가 긴다리 입구에서 우측으로 빠지면 두들마을과는 5분정도 거리다. 입구에서 영양출신 여성운동가인 남자현 애국지사의 흔적을 만나 역사속에 잠시 머문 뒤 낮은 구릉을 지나면 언덕위에 넓게 자리한 두들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행정구역상 이름은 석보면 원리(院里). 조선시대 이 곳에 나라에서 세운 광제원(廣濟院)이 있어 불려진 이름이다. 원두들이라 불리기도 한다.
1640년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1590~1674)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 들어 와 개척한 이래 재령 이씨 영해파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 곳이다. '두들'은 '언덕'이라는 뜻. 마찬가지로 이 마을은 가파르게 깎아지른 절벽위에 형성돼 있다. 광려산을 뒤에 두고 남향으로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안은 곳곳이 전통 한옥들이다. 석천서당·종가·석계고택·유우당·주곡종택·녹동댁·소계댁 등 모두가 문화재나 민속자료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고가옥들은 여느 전통마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모양새는 찾아 볼 수 없다. 하나같이 단아한 기와로 지붕을 잇고 부용 등 치장도 없다. 그저 회벽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것이 선비의 검소함을 드러내는 듯 하다. 이같은 선비의 기풍은 '칠현자(七賢子)·칠산림(七山林)'이란 말에서도 나타난다. 석계선생과 정부인 안동 장씨 사이에 태어난 일곱 아들은 하나같이 어질어 현자로 칭송 받았다.
또 정부인 안동장씨는 특별한 자녀교육으로 장남 상일에서부터 사남 승일, 손자 재(栽)와 만(萬)까지 일곱명이 학문과 덕행으로 벼슬에 올랐고 문학가·서예가·화가로서도 이름을 알렸으며, 특히 한글로된 최초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을 펴내는 등 '위대한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이들이 청빈과 지조로 살아왔던 마을을 떠받들고 있는 절벽에는 석계선생의 아들인 승일이 새겨 놓은 동대·서대·낙기대(樂飢臺)·세심대(洗心臺)라는 글씨가 뚜렷하다. 검소함과 선비의 지조가 물씬 풍겨난다.
유교문화권사업 두들마을 개발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병균(75)씨는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두들문화마을은 낙기대 절벽 위쪽마을로 한옥 11채가 남아있다"며 "세심대 절벽쪽 두들마을은 아랫대들이 분가해 이룬 마을로 현재 양옥 등 현대적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옥 11채 중 현재는 5가구 정도만 살고 있고 나머지 집들은 가족들이 모두 객지로 나가 빈 집이 돼있다.
지난 40년대만 해도 두들마을의 재령 이씨들은 70여 가구 200여 명이 살았으나 지금은 30가구 50여 명도 채 안된다. 60년대부터는 타성들이 들어와 지금은 40여 가구 100명의 타성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민 김시훈(52)씨는 "두들은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전통의 모습을 친근하고 정겹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다"며 "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맡을 수 있는 향기와 같은 것"이라 했다.
두들마을은 지난 94년 문화관광부로부터 시범문화마을로 지정됐다. 이후 정부는 마을 동쪽에 흩어진 고가옥들을 보존하고 슬레트 건물과 빈집, 담장 등을 헐거나 새로 올려 한옥과 어울리도록 개발하고 있다.
또 이미 지난 2001년에 개관한 두들마을유물관을 비롯 내년 공사에 들어 갈 안동 장씨 예절관 등을 통해 전통의 재창조를 모색하고 있다. 마을 안쪽 콘크리트 포장길은 황톳길로 새로 단장한다.
지난해 5월에는 이 마을 출신 소설가 이문열씨의 문학관인 광산(匡山)문학연구소가 170평 규모의 전통 한옥으로 문을 열었다. 이 곳을 찾는 숱한 문학인들은 두들마을의 전통과 마을의 독특한 향기를 통해 이문열 문학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이같은 보존과는 달리 세심대 절벽위에 새로 형성된 두들마을은 현대적 개발이 한창이다. 석보문화마을 추진위원장 이병태(69)씨는 "두들마을은 전통을 보존개발하는 동시에 현대적 문화마을 조성으로 과거와 오늘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라며 "옛 정취를 고스란히 살리면서 개발하게끔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절벽 아래로 화매천과 인지천이 마을을 감싸고 명동산과 맹동산 등 인근 고산 준령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지맥의 끝을 내리는 곳. 오늘도 두들마을 사람들은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 선조들의 기풍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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