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부인의 나의 삶, 나의 남편-(3)권영길 후보 부인 강지연씨

입력 2002-12-12 14:53:00

"아직 콩깍지가 안 떨어졌거든요". 민노당 권영길 후보 부인 강지연씨는 11일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시위현장을 쫓아다니며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는 '지아비'를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평탄한 삶이 아닐지라도, 결코 부끄러운 삶은 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는 게 이유였다.

저녁 대구백화점 앞 광장.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죽은 효순·미선 추모 촛불집회가 열리는 현장에 도착, 촛불을 들고 '아침이슬'을 부르며 30여분을 함께 한 강씨는 시민들을 향해 "효순이 미선이가 의정부에서 죽은 소녀라고 생각지 말고 여러분들의 동생이고 딸이라고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강씨는 이 자리에서 선거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다. 강씨는 촛불시위를 계속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촛불시위 현장을 벗어났다. "악수를 하면 한 표가 오겠지요"라는 말과 함께 손을 기자에게 내밀었다.

강씨는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창업주의 딸 그것도 무남독녀다. "정말 잘사는 집에서 태어나 금지옥엽처럼 자랐다. 외제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을 정도였으니까요"라고 회고했다. 그런 그가 좌익활동 때문에 죽은 아버지를 둔 남편을 만나면서 다른 삶을 보게 된다.

강씨는 "다같은 줄 알았는데 제가 모르던 세상을 알게 해준 사람이 남편"이라고 고백했다.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꼭 당선될 것만 같다"고 웃었다. 자신의 성격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부부싸움은 하는지' 물어봤다.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부부싸움을 하면서 정이 든다고 하지요. 그러나 저는 안타깝게도 부부싸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믿기지 않아 재차 추궁(?)하려니 강씨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싸움을 할 수 없었노라"고 했다.

그래도 '바가지는 긁느냐'고 슬쩍 떠봤다. 그랬더니 강씨는 "가끔씩 바가지를 긁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웃으면서, 웃을 수 있도록 바가지를 긁는다"고 답했다. 강씨는 또 권 후보가 여자문제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연애하던 시절 변치않는 '절대사랑'을 하자고 말했던 그 마음 변치않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모범답안'을 이야기했다.

권 후보의 성격은 어떨까. 진보 정당의 대표이자 후보 답게 '터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귈 때는 말수가 적은 것이 매력이었는데, 살다보니 재미가 없어 안 좋더라"고 했다. 무뚝뚝하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터프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세심하지는 않지만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과 행동속에서 느끼고 있다"고 했다.

권 후보가 가사일을 잘 돕는지 궁금했다. 강씨는 "요즘은 바빠서 설거지를 도와주지 못하지만 대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주고, 먹고 나면 반찬을 다시 냉장고에 넣어주는 일,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어주는 것은 계속 한다"고 했다. 또 "가끔 된장찌개나 생선찌개로 가족들에게 봉사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함께 시장간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바빠서 엄두를 못낸다'는 답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강씨는 "대선 전에는 가락시장에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럴 기회가 없군요. 마지막은 8월로 기억된다"며 장보기를 마다하지 않는 남편을 추켜세웠다.

그래도 흠없는 남편이 어디 있을까. '평범한 소시민'의 자화상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강씨는 뜻밖에도 '술버릇'을 꼽았다. "남편은 기자 시절 밤늦게 만취된 채 들어와 엉엉 우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보통 때는 덤덤한 사람이 술 한잔 마시고 들어오면 애정표현을 잘 하니까 싫지 않아서 내버려뒀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잡았어야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네요"라고 후회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녀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단다. 남편에게 수배령이 떨어지고 형사들이 대문 앞에 진을 치고 살았던 시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8년전 이맘 때였다. 졸업 여행 떠난 아들을 쫓아가서 콘도 문을 열어제치기도 하고, 여자 친구를 만나는 아들을 검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화벨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렸고, 전화를 받으면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까지 허다했다. 그런 생활이 7, 8개월 동안 계속된 것으로 강씨는 기억했다. 그녀는 당시를 "무서워서 견딜 수 없던 시절"로 규정했다.

강씨는 딸 혜원씨 얘기를 들려줬다. 혜원씨가 동성동본인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권 후보가 극렬 반대한 것은 이미 알려진 얘기다. 그녀는 "처음엔 동성동본 때문에 반대를 했다가 나중에는 생각을 고쳤다. 동성동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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