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하는 오후

입력 2002-12-05 16:05:00

골동품 가득한 토속음식점에 갔다. 마당 가에 놓인 소쿠리 비에 젖고 있었다

처마 밑 동개동개 쌓은 장작

다 젖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내 마음을 호박넝쿨이 둥글게 말아 올렸다

반쯤 젖은 장작 어깨 위로 둥근 호박잎

쫘악 몸 펼쳐 젖고 있었다

대신 젖는다는 것은

대신 아파한다는 것이다

아픔도 그리움의 모자를 쓰고 익으면

몸 속 깊은 향이 배어난다며

전골찌개 뚜껑 들썩이며 익어가고 있었다

-김호진 '장작'

◈시의 전경은 간단하다. 시골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속품 장식이 진열된 음식점에 비가 내리고 있다. 시의 화자는 음식을 주문해 놓고 비에 젖고 있는 소쿠리, 장작, 호박잎을 보고 있다. 중요한 구절은 '대신 젖는다는 것은/대신 아파한다'는 구절이다. 이것은 타자에 대한 시인의 극히 열린 마음이다. 나 대신 누군가가 아프다는 인식, 그 누구는 가족일 수도 나와 무관한 타인일 수도 있다. 시의 본질은 타자에 대한 애정이다. 그래야만 아픈 몸에서도 향기를 낼 수 있다.

김용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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