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입시전사

입력 2002-12-05 00:00:00

인문계 고등학교의 매일은 전쟁이다. 오전 7시40분까지 등교하여 오후 9시 귀가할 때까지 기계적으로 철저히 움직인다.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마쳐도 다시 학원이나 도서관에 남아 더 공부한다. 귀가해서도 교육방송을 시청하고 공부, 공부, 또 공부한다.

다음날 피곤이 가시지 않은 채 등교한다. 0교시 특기.적성시간에 학생들은 무겁게 누르는 눈꺼풀을 어쩌지 못한다. 어디 주말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인가? 밀린 공부에 처진 부분을 보강해야만 한다. 쉴 시간은 없고 지칠대로 지쳐 무기력하기까지 하다.

0교시를 폐지하여 활력을 주자는 어느 TV 프로그램의 취지에 전적으로 찬동한다. 청소년기의 정서적.신체적 발달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우리 고등학교 교실이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 일을 누가 마다하랴.

하지만 0교시 수업을 전국 모든 고등학교에서 폐지하면 모를까 우리 학교만 하지 않는다면 입시에서 받을 손해와 타격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한때 학생들의 특기와 적성을 살린다고 교과 못지 않은 비중으로 특기 적성 교육이 무성했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창의성과 개성이 특히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대학 입시에서 개성과 특기를 교과보다 더 중요하게 다룬다면, 그런 교육을 누가 하고 싶지 않으랴,

인문계 고등학교의 하루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3년이 내내 전쟁이다. 일류 대학 입학이 개인의 장래를 상당 부분 보장해주는 우리 현실은 전쟁도 불사하게 만든다. 학생의 장래가 대입 여부에 달려있는 한, 학생들은 입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승리를 쟁취하려고, 어떤 교과의 문제도 쳐부수는 입시의 전사(戰士)로 커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입시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는 현재의 인문계 교육은 학교장의 의지나 교사의 교육적 양심의 문제와는 별개로 시스템의 문제이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학교 붕괴'란 표현은 본질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며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화려한 수사일 뿐이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우리 학생들이 견뎌내며 건강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한국의 고등학교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 긴 어둠의 터널을 견뎌내면서 학생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용기를 매일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우리 모두가 교육 시스템 개선을 위해 함께 고민한다면 언젠가 한국 교육의 미래도 밝을 것이다.

김종호(경북대사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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