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窓-방송진행 '변화바람'

입력 2002-12-03 14:23:00

몇 년 전만 해도 라디오의 스튜디오는 신비로운 장소로 인식되었다. 라디오 진행자가 엽서를 조곤조곤 읽어주고 신청 음악을 틀어주는 단정한 진행방식이 라디오 방송의 전형이었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 언제나 잘 정리되고 편집된 화면이 방송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정리된' 방송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 도중 작가나 PD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오는가 하면 진행자와의 대화 내용이 전파를 타기 일쑤다.

즐거운 사연에는 같이 웃는 소리도 나와서, 방송을 듣고 있노라면 청취자들이 마치 PD나 작가들과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방송사고 아닌가'싶을 정도도 있다. MBC FM '이소라의 FM음악도시' 이전에 가수 유희열이 방송을 진행할 때다. 마지막 방송을진행하던 유희열이 감정에 북받쳐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꽤 오랜 시간 아무 소리도 나가지 않았고 유희열은 꺼억꺼억 울었지만 청취자들은 오히려 같이 눈물을 보였다. 청취자들이 인간적인 모습에 방송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된 것이다.

'윤도현의 2시의 데이트'도 마찬가지. 윤도현과 작가가 이야기하는 소리나 게스트들이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전파를 타기도 한다. 스튜디오를 지나가는 연예인을 붙잡아 깜짝 인터뷰를 하는 것도 다반사다.

텔레비전에서는 이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던 스테프들이 자주 얼굴을 내보인다. 매니저나 조명스테프, 오디오맨 등이 종종 등장한다. 카메라맨도 마찬가지. 게임 프로그램에서 불쑥 출연자의 매니저가 나와 게임을 하는가 하면 진행자가 갑자기 오디오맨을 향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드라마도 예외가 아니다. 본 드라마보다는 NG장면 모음이 더 인기있을 때가 많고 NG장면을 따로 모아 방송하는 프로그램까지 있을 정도다. KBS2 '쇼 파워비디오'에는 각종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의 NG장면들을 모아 내보내는 코너가 있다.

방송이 정해진 포맷에 균열을 일으키고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사람들의 변화와 관련있다. 주어지는 일정한 형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새로운 세대들의 사고방식은 꽉 짜인 형식에 식상함을 느낀다.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가 발달하면서 도발적 상상력을 키워온 이들은 근엄하게 접근하는 방송형식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방송사고라며 상상도 못했을 소음들이 방송에 당당하게 끼어드는 추세에서 앞으로 어떤 기발한 형식이 나오게 될지 기대된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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