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四面楚歌 '흡연족'

입력 2002-12-02 15:49:00

담배는 지난날 우리에게 권위와 멋, 정한과 여유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사랑방에서 집안 어른이 곰방대의 담뱃재 터는 소리는가부장제의 대가족 사회에서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할아버지가 곰방대를 털면서 큰 소리를 내면 온 집안이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할머니의 담배는 또다른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인내와 한의 출구를 여는 정한의 의미를 안고 있었다고나 할까. 마도로스 파이프의 경우는 여유와 멋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의미들은 아득한 옛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버린 느낌이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설자리는 날이 갈수록 좁아져 사면초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이나 공공장소는 말할 것도없고, 가정에서마저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버린 지 오래다. 이젠 늦은 밤 아파트 베란다의 창가를 서성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소위 '반딧불족'들이 크게 늘어나고, 그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워져 보일 정도로 세태가 바뀌었다. 그 사정은 지구촌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이집트에서는 관리 가운데 흡연자는 출세 길도 막겠다고 공표한 바 있고, 이슬람 지도부는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발표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가 부과되고, 대학 입시에 불이익을 줄 움직임마저일고 있다. 우리 사회에 건강 문제가 큰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흡연자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살인 행위를 저지른다는 죄책감에서자유로울 수 없는 단계마저 넘어서 추방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노르웨이에서는 2004년부터 레스토랑·술집에서의 흡연마저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 이 법안이 통과되면 모든 공공장소의 실내에서의 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세계 첫 번째 나라가 된다. 최근 호주에선 골초 어머니가 아들 앞에서 금연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10세의 아들이'엄마와 할아버지가 워낙 골초여서 집에 가기 싫다'고 해 그의 아버지가 소송을 제기, 그런 판결을 받았다. 게다가 집 밖에서 흡연해도 연기가몸에서 없어져야 들어갈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담배가 흡연자의 건강을 망가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간접 흡연의 피해도 25%나 된다니 흡연자 추방론은 설득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해 보인다. 공권력의 일방적이고 포괄적 금연 조치에 대해 프랑스의 일부 지식인들이 근래에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 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일부 국민의 '담배 피울 자유'마저 앗아가는 측면도 있다"는 반대론을 편 적도 있지만, 공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오랜 세월 권위와 정한, 여유와 멋의 상징이었던 담배의 운명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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