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鄧小平)이 후계자인 장쩌민(江澤民)에게 권력을 물려준 뒤 병원에서 요양 중인 것으로 알려졌을 때의 일이다. 중국을 방문한YS가 희대의 지도자를 만나고 싶어 당시 황병태 주중대사에게 면담을 주선토록 했던 모양이다. 황 대사는 한국과 친분이 있는 덩(鄧)의아들을 통해 협조를 요청했다.
YS가 심야에 경호진 없이 아버지를 방문, 문병하고 존경을 표시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아들의 대답은엉뚱했다. 아버지의 입술 밑에는 핏자국이 있긴 하지만 와병 중인 것도, 병원에 입원한 것도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덩샤오핑은 평생을 혁명가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인물들은 고락을 같이 한 혁명동지들이다. 황혼의 그로서는 동지들과 교유하는 이상의 즐거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덩(鄧)은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의 욕구를 참기 위해이를 앙 다물었고, 그것이 입술 밑 핏자국을 만들었다. 덩(鄧)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지금 사람을 만나면 누가 장쩌민을 인정하겠느냐. 구세대들과 얼굴을 함께 하면 세대교체의 공든 탑까지 무너지고 말 것 아니냐"고. 아들은 아버지가 "지금 죽어야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이해했다. 실제로 그는 공산당 당장(黨章)에서 덩샤오핑 이론으로 살아남아 있다. 대통령 퇴임 후 온갖 독설을 퍼뜨리며 국민들의 심기를 흐린 YS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때 YS의 면담이 불발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정치 엘리뜨의 등용문이다. 민주국가들이 선거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동안, 중국은 공산당 조직을 통해 인재를 충원한다. 인재검증의 방식은 민주사회의 선거보다 더 직접적이고 확실하다. 당 업무를 맡겨 역량과 리더십이 평가돼야만 상위 기관 진출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그런 단계를 거치다 보면 부적격자들은 저절로 도태된다. 덩샤오핑은 이런 과정에서 장쩌민을 후계자로 선정했고 후진타오(胡錦濤)를 8년 전에 차차기(次次期) 후계자로 점찍었다.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최근 "모든 수준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민주화 과정을 통해 취약한 정권기반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언급을 순수하게 본다면 중국의 정치체제가 더 이상 경제개혁의 성과와 부작용을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신흥 기업가·지식인 등이 요구하는 정치적 다원주의와 빈부격차, 실업난 등을 공산당이 흡수해주기는 역부족이라는 말이다. 중국 공산당의 민주화 바람이 한반도에 어떤 여파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박진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