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은 전원주택들

입력 2002-11-29 14:01:00

김병구(가야 기독병원 내과과장·54)씨의 가창집은 꼭꼭 숨어 있다. 가창댐을 조금 지나 정대숲에 다다르기 조금 전 오른 편 마을이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매내미. '가창댐 근처라고? 가창 댐에서부터 헐티재 너머 각북까지 흔해빠진 게 전원주택인데…' 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과장의 집은 차가 오가는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

대구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드라이브 코스에 있지만 김 과장의 집이 들어선 매내미 마을 전체가 운전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작은 마을인데다 지형적으로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리가 김 과장의 집이다. 차에서 내려 대나무로 짠 사립문 앞에 이를 때까지 집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사립문 앞에 닿고 나서야 '세상에!'하고 내뱉게 만든다.

"기왕에 도심에서 벗어나려고 마음먹었으니 한적한 곳이 좋죠". 김씨가 이곳에 집을 지은 것은 1988년. 6,7년 전부터 이 지역에 전원주택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었으니 '전원주택 1세대'인 셈이다.

그가 일찍이 전원주택을 지은 이유는 뭘까.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어서? 도시 생활이 싫어져서? 아니다. 그는 볼륨을 높이고 싶었다. CD, LP판 수집광이기도 한 그는 음악에 묻혀 사는 사람이다. 해방 이전의 국내음반만 1천장, 해방 전 국내에 나온 판소리 전집 9질 중 7질을 소장할 정도다. 그러나 도심 아파트에서는 기분 내키는 대로 볼륨을 높일 수 없었다.

그의 집은 여느 전원주택과 달리 견고한 대문이 없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사립문이 전부다. 벽돌담도 없다. 집 앞은 개나리 울타리가 담이고 집 뒤는 병풍처럼 둘러 선 참대나무 숲이 담을 대신한다. 지붕과 외벽은 50년이 지나야 썩는다는 적삼목을 써 자연과 조화를 꾀했다. 760여평 대지에 집은 고작 30평을 차지할 뿐이다.

따로 나무를 심지도 않았고 주변 풍광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집터 인근 터줏대감이던 나무와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다만 그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게 집을 지었을 뿐이다. 정원을 가꾼답시고 잔디를 깔거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도 않았다. 집이 길가에서는 물론이고 동구 밖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자연을 닮은 때문일 것이다.

이 집 마당에 서면 바깥 풍경이 막힌 데 없이 펼쳐진다. 개나리 울타리 너머로 최정산의 계곡이 들어오고 옹기종기 모인 이 마을 집들의 지붕이 들어온다.

그의 집안엔 액자가 보이지 않는다. 액자 하나쯤 걸어놓으면 좋았겠다 싶은 자리엔 어김없이 전통문양의 창호를 냈다. 바깥엔 현대식 새시를 달았지만 안쪽엔 전통 문양의 창호를 내 그림을 대신한 것이다. 창을 열면 빨갛게 익은 감이 지금이 늦가을임을 말해준다. 봄엔 진달래가 액자를 대신한다.

현대식 집의 베란다 창문 자리엔 사랑방 선비의 창을 달았다. 한지를 바른 선비의 창은 따로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필요 없다. 떡살 문양의 창을 닫으면 어둠이 방을 차지하고 열면 햇빛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구씨는 이 집에서 신중섭의 '빗속의 여인'과 나애심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듣는다. 또 무시로 찾아드는 벗들과 술잔을 기울인다. 사람들은 병풍처럼 집을 둘러싼 대나무의 노래에 좀처럼 떠날 줄 모른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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