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마을-성주 한개마을

입력 2002-11-25 14:30:00

경상도에서 현존하는 4대 전통마을을 꼽으라면 안동의 하회마을, 경주의 양동마을, 함양의 개평마을, 그리고 성주의 한개마을을 꼽는다. 양동 사람들은하회마을을 최고로 치고 두 번째로 양동마을을 치지만, 이곳 한개 사람들은 최고를 하회마을, 둘째로 한개마을을 친다.

어느 한쪽은 틀렸다고 시비를 따질 문제는 아니다. 자기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70리, 성주읍에서 20리길인 한개마을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다. 선남과 벽진을 잇는 군도 302호선이 통과하는 이 마을은 풍수지리학상 영남 최고의 길지로 꼽히는 곳. 60여 가구, 190여명이 살고 있다.

마을 전체 57 채의 집 중 46채가 전통 건축물이다. 찾기도 쉽다. 차를 타고 선남-벽진간 군도를 달리다 보면 성주읍을 8㎞쯤 남겨놓았을 무렵 온통 고풍스런 기와집들로 가득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서툰 눈으로도 집들은 저마다 아늑한 마을 모양에 알맞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게다가 여느 이름난 민속촌 못지 않게 전통가옥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민속마을이나 명승지 구경을 나섰다가 '유명세만 못하더라'며 돌아섰던 사람들에게는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성 싶다.한개마을은 1450년 성산 이씨(星山 李氏)인 진주목사 이우(李友)가 마을을 개척한 후 씨족마을로 발전했다.

현재는 월봉공 이정현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뤄살고 있다. 마을은 높이 325m의 영취산(靈鷲山)을 등에 지고 백천(白川)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한주종택(寒洲宗宅), 북비고택(北扉古宅), 교리댁(校理宅), 월곡댁(月谷宅), 진사댁(進士宅), 하회댁(河回宅), 극와고택(極窩古宅) 등 7개 건축물은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외에 다양한 민속자료들도 학계의 연구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이 마을 큰집들 중 가장 오래된 교리댁은 1760년경에 지어졌다 한다. 창건주 이석구의 후손인 이귀상이 가장 깨끗한 벼슬인 홍문관 교리에 역임하면서 교리댁으로불려졌다.

1767년 이민검이 창건하고 1866년 성리학자인 한주 이진상이 중수한 한주종택은 이 마을 제일 안쪽이면서 동쪽 산울타리에 자리잡고 있다. 수려한 모양새와 함께 집의 원형이 잘 보존돼 사극영화에도 몇 차례 등장했던 집이다.

하회댁의 택호는 종부가 하회마을 충효당에서 시집온 사람이라는 데서 연유한다. 이는 양반촌인 하회마을에 대한 배려임과 동시에 한개마을 양반들의 자존심이기도하다.

"성주 사람과는 혼사가 없었어요. 안동.봉화.상주 사람들과 혼례를 올렸지요". 북비고택 현 종손 이수학씨의 말은 일견 외고집처럼 들린다. 그러나 한개마을을이야기하려면 당시를 이해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묵직한 무게가 담겨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용어를 불문하고 '양반'은 염치와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자유분방해 보이는 이 시대의 '양반'에게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듯 당시 한개마을 양반들에게 성주 바깥의 역외혼(域外婚)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였다는 말이다.

북비고택 종손은 그런 시대가 없었다면 오늘 날 한개마을의 존재는 불가능했을는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한개마을은 푸근하고 정겹고 아름답다. 오랜 역사를 품은 마을이니 후세에 전할 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개마을은 침묵할 뿐이다. 어디에도 시끄러운 소리가 없다. 시골 마을 어디에나 들릴법한 경운기 소리조차 이곳에는 들리지 않는다.

새소리와 낯선 이의 발소리를 경계하는 개 짖는 소리가 전부다. 마을을 찾는외지인도 드물다. 전통마을을 스케치하는 이방인, 전기안전을 점검하러 나온 사람이 고작이다.

비닐하우스나 겨울작물이 자라는 여느 농촌과 달리 한개마을의 논밭엔 겨울바람이 서성댈 뿐이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없기 때문이다. 전통을 지키는 힘이 그만큼 쇠약해졌다면 기우일까. 그러나 전통마을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고충을 무시한 채 '당신은 남아 전통을 지키시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염치없는 말이리라.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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