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그대 이름은

입력 2002-11-20 15:03:00

일본서 사는 A씨는 남편이 일본인이다. 처음엔 말도 잘 안 통하고 가치관도 달라 찌그락짜그락 다투기도 했다. 몇년전 그날도 부부가 꽤 크게 다툰 뒤 한 재일교포 여성에게 상담을 했다. 도저히 못살겠다며 흥분하는 부부에게 그 여성은 말했다. "한국여자는 시끌벅적 떠들어도 뒤끝이 없지만 일본여자는 앞에서는 네네 하다가 어느 순간 칼로 찌릅니다". 그 여성의 말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이른바 '황혼이혼'을 빗댄 것이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도 주목할 만한 새 기류가 흐르고 있다. 남의 나라일만 같던 황혼이혼이 늘어난다는 사실, 또 하나는 '여성의 이름'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생 바람을 피워온 75세 노인이 최근 74세 아내로부터 이혼당했다. 재판부는 남편이 아내에게 위자료와 재산분할로 5억원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얼마전엔 70대 할머니가 수십년간 두집살림을 하며 자신을 무시해온 남편과의 이혼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난 99년 70대의 한 할머니가 수십년간의 억압적인 결혼생활을 견디다못해 이혼소송을 냈을 때 "여생이 짧으니 해로하시라"는 이유로 패소, 황혼이혼이 사회이슈화됐다. 그 할머니는 끝내 항소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았고 이후 노년이혼은 계속 늘고 있다.

2001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년 이상 동거부부의 황혼이혼은 지난 10년새 3배나 급증했다. 또한 황혼이혼의 원고는 80%가 여성들이다. 자녀 출가후 인내의 한계상황에서 나타나는 이혼소송의 이유는 "지난 세월은 몰라도 남은 인생은 맘편히 밥먹고 잠들고 싶다"는 것. 법정도 이제는 "참고 살라"며 무조건 말리는 대신 남은 삶의 하루하루가 더 소중함을 인정하는 추세다. 이는 원고의 20%인 남성노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또하나 시선을 끄는 것은 조선왕실 후손 최대 계파인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종친회가 여자후손들의 이름을 족보에 올리기로 한 사실이다. 이미 여성을 족보에 올린 문중도 더러 있지만 효령대군파의 경우 대표적인 보수문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적지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이름. 그러고보니 지금 60, 70대 할머니들 중엔 재미있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 이름들이 적지않다. 깜불이, 끝분이, 끝님이, 골목개, 붙들이, 분통, 둘레.... 딸 그만 낳고 아들 보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담기도 했고, 긴 명줄을 위해 짐짓 천한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21세기는 상생(相生)의 시대라는데 가장 친밀한 부부사이부터 사랑과 이해 위에 상생의 미덕을 가꾸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전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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