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억제'에 '금리인상'까지

입력 2002-11-20 14:47:00

아파트 구입 잔금이 필요해 지난 14일 은행을 찾은 김모씨는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불과 며칠전만 해도 감정가의 60%까지 대출해주겠다던 은행원이 갑자기 말을 바꿔 36%까지만 대출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계약금을 이미 집주인에게 건넨터라답답한 마음에 김씨는 항의해봤지만 "간밤에 대출내규가 바뀌었다"는 답변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방침을 등에 업고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리고 예금금리를 낮추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대폭 낮춘데다 만기연장 심사를 까다롭게 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서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물론 가계부실에 따른 신용경색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가계대출 죄기 서민들은 괴롭다=정부와 은행의 '가계대출 옥죄기' 작전에 서민들은 허리가 휠 지경이다. 무엇보다 대출 금리가 올라 가계 부담이 커졌다.

1억원 대출자의 경우 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연간 이자 부담액이 100만원 불어난다. 총 대출금의 0.6~1.0%를차지하는 근저당 설정비를 은행들이 최근 부활시키고 있는데 따른 추가 부담도 연 0.2~0.3% 포인트에 이른다.

주택 담보가치를 은행들이 하향 조정하면서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시가 1억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제공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릴 경우 담보 가치를 60%까지만 인정하는데다 방 공제까지 하기 때문에 4천600만원이 대출 마지노선이 된다.

중도금 대출도 어려워졌으며, 일부 은행들은 이미 빌려준 중도금을 갚으라고 독촉하고 있다. 아파트 시세의 60% 이상을 빌린 사람들은이제 만기연장도 불가능해졌다.

▨이자 생활자도 괴롭다=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올리면서도 정작 예금금리는 동결하거나 오히려 내리는 이중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국민은행은 주택청약예금 금리를 연 4.85%에서 4.65%로 낮추고 1~5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도 0.1% 포인트 인하한다고 최근 밝혔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예금금리 인하를 단행했거나 검토하고 있다.예금금리 하락은 노후 자금을 은행에 넣고 이자로 살아가는 퇴직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이자에 붙는 세금을 감안할 경우 웬만한 고금리 상품에 돈을 예치하더라도 실질 이자율은 물가상승률에 머물고 있다.

▨가계 고객 왜 푸대접하나=가계대출에 대한 정부의 초강경 억제 방침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열린 대출담당 은행임원회의에서 "가계대출을늘리는 은행에 대해서는 특별검사를 통해 경영진과 직원을 문책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불어나는 가계대출이 제2의 금융위기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위기감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금융당국으로부터 대출금리를 올려도 좋다는 허락까지 받은 은행들로서는 '이게 웬 떡이냐'인 셈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제살 깎아먹기식의 가계대출 경쟁을 벌이면서 생긴 부담을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고객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www.fss.or.kr)를 통해 "요즘 은행과 금감원은 정말 한심하다.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가계)대출을 해주고이제 와서 문제가 되니까 모든 책임을 고객들에게 떠넘기나"라며 비판했다.

▨관치금융 시비와 신용경색 우려=가계대출 부실화 우려에는 공감하면서도 정부의 방법론은 잘못됐다는 비판이 은행권 내부에서도 만만치 않다.익명을 요구한 은행 관계자는 "소비로 흐르는 가계 대출은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총량적이고도 무차별적인 가계대출 억제는 일시적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가계대출금리 인상까지 유도하면서 은행에 대한 직접 규제에 나섬에 따라 금융시장의 자율성과 중앙은행의 정책기능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또한 가계대출 총액 가운데 내년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금액이 100조원 가량된다는 점도 우려할만한 요소다.

전반적인 경기회복 지연 분위기 속에서 은행들이 연장 심사를 까다롭게 함으로써 자칫 내년말 가계대출 발(發) 신용대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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