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통령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통합21의 정몽준 후보 사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던 단일화 합의가 하루만에 다시 틀어졌다 협상을 재개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합의 사항에 포함되었던 여론조사 방식이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공정한 조사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이 빌미가 되었다. 이를 이유로, 통합21 측에서 단일화 추진협상단 전원이 사퇴할 정도로 재협상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양 후보의 단일화 합의는 나름대로 이유를 내세웠지만 결국 '1강 2중'의 구도에서 승리를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고, 이는 대선 구도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되었다. 이에 따라 대선 후보에 대한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언론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중대한 사안이 무산될 위기까지 가기도 했던 것은 협상에 임하는 정치가들이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특히 통합 21 측에서는 여론조사 방식의 공개를 이유로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속내는 설문내용에 대한 재협의를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선관위에서 여론조사를 위한 사전 TV 토론을 단 1회로 제한하였기 때문에, 재협의는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재협의 과정은 각 후보에게 더 유리한 설문내용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유권자들로부터 단일화의 정당성을 확보할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사실 후보 단일화를 포함하여 대선 관련 사항들에 관한 대구·경북지역 유권자들의 여론 조사는 다소 역설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후보 단일화에 대하여 응답자들의 48.2%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그리고 33.2%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자료에 유추해 보면, 지역인들 가운데 보다 많은 사람들은 이념과 정책이 다른 두 후보가 단지 승리만을 위해 야합했으며, 따라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과 자민련을 탈당한 의원들이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17.8%가 '적극적인 찬성'을, 그리고 34.1%가 '찬성'을 보였고, 30.7%는 부정적 의견을 나타냈다. 즉 지역인들 가운데 51.9%가 탈당 의원들을 비난하기보다 이들의 행위를 두둔하고 있다. 그 동안 집권 여당의 이익을 누렸던 의원들이 아무런 이념이나 정책 없이 대선을 앞두고 당선가능성이 높은 정당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해, 지역인들이 어떻게 이렇게 관대한가 .
지역 유권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분명 어떤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과 통합21의 후보 간 단일화는 바람직하지 않고, 소신 없이 한나라당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내가 하면 결단이고, 남이 하면 야합이다. 이러한 불합리성은 인식의 기준이 특정 정당에 편향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이나 편향성은 민주시민이 견지할 자세는 결코 아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성향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선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호는 감정적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일관된 기준에 따라야 한다.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이념과 정책을 꼼꼼히 따져보고, 과연 어떤 후보가 국가나 지역사회의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살펴 본 후에,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특정 후보의 선호가 다른 후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무조건적인 선호 또는 반대는 후보들을 정당한 정책 대결이 아니라 감정 호소에 의존하는 치사한 경쟁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 결과, 후보들 간 대립뿐만 아니라 각 후보의 지지자들 간 갈등이 야기되고, 선거는 극도로 혼란스럽거나 또는 이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주의로 빠질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국가와 지역사회의 민주화를 퇴행시킬 것이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후보 단일화는 단순히 정당 내에서 후보들 간에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유권자들로부터 그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민주당과 통합21 그리고 양 후보는 이 점을 깨닫고 보다 신중하게 대선에 임해야 하며, 단일화가 선거과정 및 선거 이후에도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임을 실천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지역 유권자들 역시 보다 냉철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후보 단일화가 단지 정치적 이합집산이 아니라 국민들의 여론을 반영한 민주 정치의 새로운 사례로서, 우리 나라의 정치 발전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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