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극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다. 반면에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가장 비극적 사랑은 아벨라르두스와 엘로이즈의 사랑이다. 이 둘의 비극은 약 천년 전에 일어났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들의 비극은 다시 천년이 흘러도 생생하게 전해질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잊혀질 수 없는 일은 잊혀지지 않으며,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벨라르두스는 학문의 역사에서 가장 철학적인 철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엘로이즈는 초기 대학의 역사에서 최초로 대학강의를 들은 귀족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사랑에 빠졌고, 당시 상황으로 올려서는 안되는 결혼식을 올린 모양이다.
이에 아벨라르두스는 엘로이즈 집안의 보복으로 거세당했고, 엘로이즈는 수녀원으로 보내져 평생 헤어져 살게 되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 엘로이즈가 아벨라르두스에 보낸 편지가 남아있다. 물론 진본 여부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논리와 현실을 넘나드는 여성철학자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호소가 담겨 있다.
엘로이즈는 아벨라르두스에게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의 자유와 의무를 논하는 편지에서, 고대 그리스의 여성철학자 아스파시아의 말을 전한다. 아스파시아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동료 철학자인 크세노폰의 부부 싸움을 화해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당신 부부가 이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성이며 가장 사랑스러운 여성이란 것을 깨닫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당신들은 최상의 행복으로 여겨지는 것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즉 당신은 최고가는 여성의 남편된 것을, 그리고 당신은 최고가는 남성의 아내된 것을 누리실 것입니다." 이 말을 엘로이즈는 '거룩한 도덕'이라고 단언하면서, 철학적인 것 그 이상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왜 이 말이 거룩한 도덕인가?
논리적으로 보면 최상의 남성도 한 사람 뿐이요, 최상의 여성도 한 사람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최고의 여성, 최고의 남성과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엘로이즈는 부부가 서로 가장 훌륭한 여성의 남편이요, 가장 훌륭한 남성의 아내라고 깨닫는 것은 성스러운 오류와 행복한 착각이라고 덧붙인다. 결국 철학과 논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오류와 착각의 효용성은 오직 사랑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최상의 자리는 늘 바뀐다. 그 어떤 자리라 하더라도 그것이 최상의 자리라면 결코 영원하지 않다. 따라서 최고의 자리에 영원히 머물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최고는 논리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허상일 뿐, 우리가 숨쉬며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없다. 다만 먼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이 최고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결국 성스런 오류는 이해해야 하는 논리가 아니라 깨달아야 하는 삶이요, 결단이다.
나아가 이러한 성스런 오류는 부부관계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나의 자식이 최고의 자식임을 깨닫는다면, 꼭 최고의 학교에서 최고의 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의 친구가 나의 이웃이 최고임을 깨닫는다면, 외로운 날도 없을 것이요, 왕따시킬 일도 없을 것이다.
나의 직장이, 나의 자리가 최고임을 깨닫는다면, 내 직장이 망하거나 내가 퇴출되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세상에서 최고인 나라임을 깨닫는다면, 기회만 오면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일도 없을 것이요, 다른 나라 시민권을 가지지 않아도 안심이 될 것이다.
덕(德)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살기에 좋은 방법이요, 나에게 참으로 유용하고 이익이 되는 삶의 방법이다. 왜냐면 덕이란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로운가 해로운가를 깨닫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도 결국 덕에 속한다. 누가 지도자로 맞느냐 틀리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누가 이 나라의 장래에 더 이로운지, 더 해로운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대구가톨릭대교수
철학과 신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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