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여성과 족보

입력 2002-11-16 14:31:00

예부터 전해오는 이름있는 분재기(재산 분배 기록)를 보면 조선조 여성들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준다. 상당수기록이 여성에게도 다른 형제들과 같이 전답과 노비등을 공평하게 나눠주고 제사도 똑 같이 지내도록 했다.

호남 가사문화의 원류인 신평송씨 면암정 송순의 분재기에는 6남2녀의 자녀중 장녀에게 밭 120마지기와 서당, 노비를 주고 차녀에게도 전답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첩의 아들 3명에게도 재산의 일부를 나눠 주는등 상속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충남 논산군 노성면에 집성촌을 이룬 파평윤씨의 노종파 중시조인 윤돈이 선조 7년 8월에 만든 '동복화회입의'문서에도 재산을 나눌 때 며느리나 딸이 참가해 권리를 보장받은 것으로 돼 있다.

우리가 대표적인 여권 침해 사례로 꼽고있는 '칠거지악' '삼종지도'등으로 여권을 옭아맨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옛 명문세가에서도 개가 사실을 인정하고 그 자손들도 떳떳이 족보에 올린 것도 발견되고 있다.

안동 권씨 성화보(1476년) 나 문화 유씨 가정보(1562년)에는 그 후대의 족보와는 달리 여인의 개가 사실과 그 자식들을 기록에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미루어 예전의 여권이 요즘 생각처럼 낮았던 것은 아닌데 그후 언제부터 여자들을 '출가외인'이라고 족보에 올리지 않고 재산 분배에도 제외 시켰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전주이씨 최대 계파로 생존 후손만 60만여명에 이르는 효령대군파가 최근 여자 후손들도 족보에 이름을 올려 주기로 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동 종친회 족보 편찬위는 "딸만 낳고 단산을 하는 후손들이 크게 느는 등 이제는 사회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여자 후손들도 이름을 올려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문파가 새로 등재할 여자 후손들만 20만여명에 이르는 대 문파이고 비교적 보수적인 문파라는 점에서 다른 문중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실 여자 후손들을 족보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남이 근거지인 성주 도씨종친회는 벌써 수년전에 여자후손과 사위까지 호적에 이름을 올렸고 이를 전산화해 인터넷에서 검색할수 있도록 전자족보까지 만들었다.

남녀 평등의식이 보편화 되고 사회 각분야에서 이미 여성의 진출은 두드러 지고 있는 마당에 새삼 여성 후손들을 족보에 올리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여성들이 남자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의식이 남아 있다는 방증이다.

조선시대에도 여권이 높았고 지금은 여성파워가 사회 주류를 이루는 분야가 많은 마당인데 이젠 여성우월의식을 가져도 무방하지 않을까.

도기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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