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시우회 달구지구-"시시한 친구 셋보다 시조 한수가 훨씬 낫죠"

입력 2002-11-16 14:45:00

"청산(靑山)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 / 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긋지 않는고 / 우리도 그치지 말아 만고상청(萬固常靑)하리라∼".

요즘도 시조 창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시민들이 많겠지만 15일 오후 대구 안지랑골 한 주택에서는 세상을 뛰어 넘은 듯한 20여명의 목소리들이 대도시의 삭막기에서 탈속하고 있었다. 그곳은 대명9동에 있는 '대한시우회' 달구지회 시조 방.모임 회장인 정윤채(대구 신매동) 할아버지는 무려 91세라고 했다.

"30년을 시조에 흠뻑 빠져 지내지. 창을 하다보면 절로 단전호흡까지 이뤄져 이렇게 건강한가봐. 건강에도 이만한 게 없어". 할아버지는 "시조를 음미하다 보면 조상의 지혜에 탄복하게 된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도 시조를 통해 훌륭한 영혼을 얻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얘기.

정두원(67.대구 신천동)씨는 "시시한 친구 셋보다 시조 한 수가 더 낫다"고 확언했다. 입문 10년째로 멀리 경주에서 주당 한두번 일부러 올라 온다는 한영길(63.농업)씨는 "시조 창을 하고 단소를 읊으면 정신 수양에 도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모임은 가는 세월을 붙잡으려는 노인들만의 모임은 아니라고 했다. 시조동우회란 뜻에서 이름을 시우회(時友會)라고 한 이 모임의 달구지회 회원은 30여명. 20대 청년에서 90대 할아버지까지 회원이 다양하다. 대구 전체 회원은 200여명된다고 했다.

여기서 창을 지도하는 김지준(82.대구 신당동) 할아버지는 '반영제' 명인으로 전국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는 원로. 800년 이상 전해 내려 온 시조 창은 영남 경우 영제, 호남 것은 완제로 불리고 그 중간을 반영제라 부른다.

김 할아버지는 "옛날 선비들은 몸소 지은 시조로 창을 하며 호연지기를 키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서구문화만 좇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창을 연습하던 민성연(67.대구 신매동) 여성 회원은 "시조 창이 바쁘게 사는 젊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휴식을 줄 것"이라고 했다.

회원들은 시조뿐 아니라 한시 창도 하고 있었다. "천지는 만물지 역려요, 광음은 백대지 과객이라" (天地萬物之逆旅 光陰百代之過客).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로다∼ 회원들이 들려 준 중국 시인 이백의 '춘야연 도리원 서'(春夜宴桃李園序)의 첫 구절은 창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영혼을 단련하는 일임을 느끼게 했다.

이 모임 회원들의 실력은 전국에서 알아준다고 했다. 각종 대회에서 1, 2등을 차지하는 일이 많다는 것. 시우회 곽명식 대구지부장은 "대구에도 시조창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내년 3월쯤 시조 경창대회를 열 예정"이라고 했다. 053)623-0453.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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