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누게에게 아이를 맡길 것인가

입력 2002-11-13 15:39:00

얼마 전 서울지방법원 서초동 청사 내에 어린이집이 생겼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참으로 감개무량한 생각이 들었다. 직장내 보육시설이므로 법원 공무원의 자녀를 우선대상으로 하고 지역주민들의 자녀들도 받는다고 한다. 보수적인 법원에서도 이제는 여성과 아동을 돌보아야 할 책무에 눈을 돌리는 것일까.

여성이 행복한 세상, 그 꿈은 언제쯤이면 이루어질 수 있을까.그간의 여성단체들의 활동과 호소에 힘입어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여성 관련 정책, 제도가 평등을 이념으로 활발히 입법화되어 여성발전기본법,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 등의 제정이 이루어졌고, 정당법 개정으로 여성공천할당제가 도입되어 역대 최다수의 여성국회의원이 탄생되는 등 정치부문에도 기회가 열리는 듯하고 특히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여성부의 신설을 정점으로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처럼 제도적, 법적인 면에 있어서 외견상 우리나라도 이제 여성들에게 평등과 기회를 보장하고 있는 듯하나 현실적으로 여성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집 밖으로 나가는 데는 너무나 어려움이 많으며 그 중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육아의 문제라 할 것이다.

'누구에게 내 아이를 맡길 것인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여성이 적어도 수년간 가정 내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어 결국 여성의 경쟁력은 저하되고, 위와 같은 제반 입법의 뒷받침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육아의 고민은 더 이상 소수 엘리트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은 물론, 잠재적으로 모든 가정의 문제이자 남녀 공통의 심각한 해결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육아의 책임은 전통적으로 개개의 가정, 특히 여성의 몫이었으나, 시대는 바야흐로 미래학자들이 '여성의 시대' 내지는 '여성이 지배하는 시대'라 일컫는 21세기이며, 남성들도 딸들의 사회활동과 아내와의 맞벌이를 원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아의 책임을 개개의 가정에만 특히 여성에게만 돌린다면 우리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참으로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이는 낳아서 길러야 하는데, 누구에게 소중한 내 아이를, 소중한 꿈나무를 맡길 것인가.

최근의 육아관련법의 변화를 살펴보면, 2001년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으로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를 가진 모든 근로자는 육아휴직을 할 수 있고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리한 대우나 해고를 하지 못한다. 또한 출산 휴가기간도 3개월로 연장되어 시행되고 있다. 영유아보육법도 개정을 거듭하면서 보육시설의 확충을 위한 정부 지원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어림없는 실태이다. 특히 2세 이하 영아를 맡길 곳을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 대구지역에는 수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으나 정작 가장 보모의 손길이 필요한 2세 이하의 젖먹이와 영아를 위한 '국공립영아보육시설'은 현재 단 하나도 없다.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대구지역에는 사설 영아보육시설조차 단 여섯 개 뿐이며 그나마도 몇 개의 구에는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250만 시민이 해마다 출산하는 신생아와 영아들은 과연 누가 돌볼 것인가. 일해야만 하는 여성들이 젖먹이를 업고 나서 맡아 줄 곳을 찾아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눈물 흘리는 안타까운 현실을 외면할 것인가.

'보육의 사회화'는 이제 절대적인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여성인권의 불모지'라는 우리 대구에 대한 불명예스런 평가는 어쩌면 향후 오랫동안 변명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정현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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