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어떤 동행

입력 2002-11-13 14:12:00

지난 이월의 봄방학 아침. 아들은 고등학생이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부쩍 주문하는 것이 많았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아들은 끊임없이 이것 저것 사달라고 주문했고 나는 필요성을 따졌다. 필자의 청년시절, 가난했으나 모두가 고생하며 공부했다는 무용담(?)으로 설득해 보았으나 아들 녀석은 도무지 굽히질 않았다. 그래서 긴급 제안한 것이 '대구에서 고향까지 둘이 걸어가면서 서로의 주장을 해보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고향까지는 130리 길. 3군(郡)의 경계선을 따라 자동차로 한시간 남짓. 부자간의 동행(同行)이 시작되었다. 겨울이 끝나 가는 이월의 날씨가 만만찮았다. 차를 타면 오분 거리가 걸어가니 족히 한시간이 더 걸렸다. 산을 넘고 들을 지나기를 몇 번씩이나 반복한 지 대여섯 시간. 늦겨울의 산마루는 살을 애는 듯했다.

반쯤 갔을까? 지금까지는 아들녀석이 열심히 자기 주장을 했으니 이젠 내 차례다. '삶의 철학'이며, '배고픔의 교훈'이 무엇이며,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등 아들 또래의 녀석들이 싫어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돈의 의미'와 '저축의 미학', '남자의 길'등등,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해는 어느덧 기울었고 지나가는 차들이 태워주겠다며 우릴 유혹(?)했지만 우리는 계속 걸었다. 그때 경운기가 우리 앞에 섰다. 타란다. 동시 합창으로 거절한다.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표현이었지만…. 언 몸을 녹일 셈으로 고갯마루 포장마차에 들르니 경운기 노인께서 우릴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사연인즉, 영농후계자로 한평생 고생하다 재기일전(再起一戰)하여 청송에서 유기농법을 배워 함안까지 무려 수백리 길을 경운기로 가시는 길이란다. 교훈이다. 참으로 생생한 교훈이다. 아들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하다.

새벽 네 시경 도착한 고향. 무려 열 여섯 시간의 아들과 동행. 그 이후 아들녀석은 내 말에 무척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해도 무척 깊어진 것 같다. 아들과의 동행 이후로 가끔 아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부모들에게 아이들과의 걷기를 권한다. 걸으면서 대화하라, 그러면 서로간의 벽이 허물어진다고.

김영국 대경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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