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클릭-멀티플렉스 영화관

입력 2002-11-11 15:25:00

변신은 끝났다. 바야흐로 '멀티플렉스(Multiplex)', 복합상영관의 시대다. 단관 혹은 2개 스크린으로 일세를 휘어잡던 과거의 극장들은 관객들의 욕구(본질적으로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멸되거나, 간판을 바꿔달았다. 극장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멀티플렉스의 양지에는 '그늘'도 있다. 단관극장 시대의 몇 배나 되는 관객을 불러모은 멀티플렉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 올랐지만, 극장끼리의 출혈경쟁과 영화보는 맛을 버렸다는 비관론도 팽팽하다.

△ 무엇이 달라졌을까

대구의 멀티플렉스는 최근 2년새 비약적으로 증가했다.2000년 12월 시네시티 한일(전 한일극장)을 시작으로, 2001년 12월 아카데미 시네마(전 아카데미극장), 올해 4월 메가박스, 7월 MMC만경관이 들어섰고, 롯데시네마 9가 내년 1월말 문을 열 예정.

여기에 중앙시네마(97년 개관)까지 포함하면 대구 극장가는 내년에 모두 1만3천여석, 53개관(단관극장인 시네마 M과 일반 소극장, 재개봉관은 제외한 수치)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반면 지난 9월 휴관한 시네아시아, 사실상 폐업을 선언한 대구극장, 지난 3월과 6월에 폐관신고를 낸 자유1, 2극장과 송죽극장 등 대형 단관극장들은 멀티플렉스의 화려한 네온사인 뒤로 사라졌다.

멀티플렉스가 가져온 극장풍경의 변화는 컸다.상영관은 많아지고, 스크린과 객석수는 작아졌다. 한 극장이 최고 15개까지 상영관을 늘렸고, 스크린은 이전 75㎜보다 35㎜로 작아졌다.

극장협회에 따르면 극장 객석수는 한일 304~148석, 중앙시네마 546~126석, 아카데미 480~119석, MMC만경관 190~79석, 메가박스 362~181석. 과거 1천석에 가깝던 단관극장들에 비하면 훨씬 작아졌다.

관객들은 볼만한 영화를 찾아 극장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게됐다. 쇼핑몰(시네시티 한일, 메가박스)이나 백화점(롯데시네마9)에서, 또 같은 건물의 오락실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심심하지 않게 영화를 기다릴 수 있다.br>

인터넷 예매를 이용하면 지루하게 줄을 설 필요도 없다. 굳이 '공짜 초대권'이 아니더라도 신용카드, 이동통신카드, 극장회원카드를 이용하면 할인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다.

멀티플렉스는 붐비는 곳을 좋아하는 젊은 층의 선호에 대규모 자본을 무기로 '깔끔함과 편리,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 멀티플렉스의 그늘

멀티플렉스 관객의 행복지수는 얼마일까."극장맛이 안 나요. 상영관을 늘리다보니 스크린 크기가 작아져 대형화면으로 영화보던 맛이 없어졌어요. 또 상영관 당 좌석수가 적어 입장권도 빨리 매진되고, 흥행 잘되는 영화만 걸려있어요".(관객)

"(작은 스크린으로 보더라도) 매진돼서 못 보는 것 보다야 낫지 않습니까. 멀티플렉스는 '보고싶은 영화'를 '보고 싶을때' 볼 수 있다는 것이지,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극장도 사업이잖습니까".(극장주)

실례로 호평은 물론, 극장 실무자들까지 전국개봉을 약속했던 '헤드윅'이 전국 9개관 상영에 그쳤다. 트랜스젠더라는 소재에 대한 거부감에다 소수마니아를 겨냥한 컬트영화보다는 무난한 블록버스터를 개봉하는 것이 차기작 배급에 유리하다는 극장주들의 판단때문이었다.

멀티플렉스의 흥행위주 전략때문에 블록버스트같은 초반 흥행포인트가 없는 '작은 영화'는 개봉당일 성적으로 일주일만에 간판을 내리기도 한다. 멀티플렉스가 도시의 강력한 위락시설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문화적 다양성은 찾기 어려운 대목.

사례하나 더. "쾌적한 관람환경을 위해 외부 음식물반입을 삼갑니다"라고 써 붙여 놓고, 시중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극장 매점에서 음식을 파는 것도 눈가리고 아웅. 다 같은 콜라, 팝콘인데. 행정지도밖에 할 수 없는 관청의 소극적 입장과, "극장이니까 그렇지"라며 놀랍도록 관대함을 보여주는 젊은층들 덕분에 묵인되고 있는 형편이다.

대구에선 얼마전 서울에서 실시된 '영화관 관람환경·만족도 조사'조차 한 차례도 실시된 적이 없다.

△ 멀티플렉스, 포화상태인가

대구시내 한 극장주는 "극장을 다녀간 관객수가 2년전 350만, 지난해는 430만명이어서 인구의 2배에도 못미친다"며 "부산 영화관객이 인구의 2.9배인 점을 들면, 대구(멀티플렉스 성장)는 아직 멀었다"는 것.

반면 일부에선 '공급과잉설'이 조심스레 새어나오고 있다.대구시내 한 극장 관계자는 "한일, 중앙, 아카데미 등 시내중심지에 위치한 영화관들이 매진 되지도 않고, 일부 멀티플렉스 극장들까지 관람객난에 허덕이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멀티플렉스는 평일 대낮엔 객석이 텅 비어 주말장사나 마찬가지. 이런 상황에서 10여개관이나 상영관 수를 늘린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다.

상영관수 증가는 극장과 영화제작·배급사간의 역학구도도 변화시켰다. 영화를 걸어야 할 상영관 수가 많아지자 자연 제작·배급사의 입김이 커질수 밖에 없다. 이는 배급사:영화사의 수익배분율을 변화시키고, 외국직배영화의 경우 수익의 해외유출이 많아질 우려가 있다.

"적자는 보더라도 투자는 계속된다".대구의 상당수 극장들은 전국 체인망을 갖춘 대기업 계열이거나, 서울에 대형 극장을 두고 있다. 이들 멀티플렉스는 대구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이곳에서 채워주고 있다는 게 통설이다.

우리나라보다 멀티플렉스가 먼저들어선 미국의 경우 지난해 10여개의 멀티플렉스들이 잇따라 파산하고, 대형 단관극장들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과열경쟁 탓이기도 하지만, 가짓수가 많은 밥상보다 '맛있는 한 그릇'을 원하는 관객들의 요구 때문이다.

멀티플렉스의 고민은 관객을 많이 불러 모으는 서비스보다, 객석에 앉은 관객을 위한 서비스에 몰두해야 한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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