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시리즈 첫우승

입력 2002-11-11 12:24:00

그들이 마침내 샴페인을 터뜨렸다.

21년간 정상에 서고자 강한 열망을 품어온 삼성 라이온즈의 '푸른 사자들'이 승리의 여신이 부여한 극적인 시나리오에 의해 기적같은 대역전극을 펼치며 승리, 애타게 원했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첫 정상에 올랐다. 삼성은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짜릿한 승부를 만들어내며 꿈을 이뤘고 한국 야구사와 대구구장에 잊혀지지 않을 '가을의 전설'을 남겼다.

10일 대구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삼성은 6대9로 뒤지던 9회말 1사후이승엽의 동점 스리런 홈런과 마해영의 랑데뷰 솔로 홈런에 힘입어 LG에 10대9로 역전승, 4승2패의 전적으로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삼성은 지난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해에 당시 OB와의 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한 이후 84년 롯데, 86년 87년 해태, 90년 LG, 93년 해태, 지난해 두산에 잇따라 패배를 거듭하다 7전8기만에 정상에 서는 감격을 누렸다.

한국시리즈 4차전 이후 맹활약을 펼치며 이날 경기에서 역전 결승홈런을 날렸던 삼성의 마해영은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으며 삼성 김응룡감독은 최우수감독에 뽑혔다.

6대9로 뒤진 9회말 원아웃 주자1.2루. 대기 타석에 나란히 서 있던 삼성의 마해영이 곧 타석에 들어서는 이승엽에게 "하나 부탁한다"며 엉덩이를 두드렸다. 이승엽은 긴장된, 그러나 결의를 다지는 표정으로 왼타석에 들어섰다. 8회부터 마운드에 나선 LG의 좌완 마무리 이상훈도 지쳤지만 승리의 결의를 다지는 눈빛으로 이승엽을 맞았다.

10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2회초 LG 최동수의 3점홈런과 2회말 삼성 박한이의 2점홈런이 터지며 초반부터 타격전을 펼친 삼성과 LG는 엎치락뒤치락하다 5대4로 앞서던 삼성이 6회와 8회 각각 3점과 2점을 내주며 패색이 짙어졌다. 삼성 선수들은 8회 1점을 만회하긴 했지만 6회 이후 패배를 예감한 듯 맥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삼성 3루수 김한수는 9회초 마르티네스의 평범한 파울 플라이를 놓치기까지 했다.

대구구장을 가득 메운 1만2천여 관중들이 "이승엽 홈~런"을 외치기 시작했다. 1천여LG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타석에 들어설 때 마다 홈런을 치라는 성원을받았지만 이승엽은 그때까지 20타수2안타로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시리즈 내내 욕심이 앞서서인지 성급하게 배트를 휘두르거나 헤드업을 하는 등 타격 감각을 잃어버린 듯 했다. 3루 덕아웃의 삼성 선수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고 김응룡감독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훈의 초구가 스크라이크존을 걸치며 몸 안쪽을 파고 들었다. 이어 이상훈의 2구, 한가운데 낮은 슬라이더가 들어오자 이승엽이 부드럽게 방망이를 돌렸다.경쾌한 타구음을 낸 공은 오른쪽으로 125m를 뻗어가며 관중들이 고대하던 관중석 너머로 떨어졌다. 이승엽은 베이스를 돌며 두손을 치켜들었고 관중들은 일제히자리를 박차며 야구장이 떠나갈 듯 함성을 토해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마해영이 LG의 바뀐 투수 최원호를 노려봤다. 원스트라이크 원볼 상황에서 마해영이 최원호의 3구를 힘차게 밀어쳤다. 마해영의 타구도이승엽 타구의 궤적을 따라가다 우측 관중석에 꽂혔다. 다시 한번 열광에 휩싸인 대구구장은 덕아웃을 박차고 나온 삼성 선수들과 홈팬들이 하나가 돼 눈물과 박수, 포옹으로 몸을 전율케 하는 우승의 감격, 최고의 순간을 빚어냈다. 야구장 스피커에서 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이 흘러나왔다.

◇한국시리즈 6차전(10일 대구구장)

LG 030 103 020 -9

삼성 021 200 014 -10

△LG 투수=신윤호 이동현(2회) 유택현(4회) 장문석(5회) 이승호(8회) 이상훈(8회) 최원호(9회.패) △삼성 투수=전병호 배영수(2회) 김현욱(4회) 노장진(6회) 강영식(9회.승)

△홈런=최동수(2회 3점.LG) 박한이(2회 2점) 이승엽(9회 3점) 마해영(9회 1점. 이상 삼성)

▲LG 김성근감독=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투수 이상훈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동현은 강판 뒤 탈진해 쓰러졌다. 장문석도 걸음을제대로 못 걸을 정도였다. 우리 선수들은 200% 이상 실력을 발휘했고 선수들의 선전과 LG 팬들의 성원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4점차로 이기고 있었지만 불안해 8회 번트 지시를 하려 했는데 공격이 빨라 놓쳤다. 우린 경기에서 졌지만 승부에서 이겼다고 생각한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한편의 드라마같은 경기가 삼성의 우승으로 끝나자 승리를 축하하는 폭죽과 운동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열기로 달구벌 전역이 들썩들썩했다.230분간의 피말리는 사투끝에 승리의 여신이 홈팀 삼성에 미소를 짓자 운동장을 찾은 1만2천여명의 시민들은 경기가 끝난뒤 1시간이 넘도록 폭죽을 터뜨리며'최강 삼성'을 연호하는 등 지난 월드컵때의 감동을 그대로 재연했다.

경기장 인근을 지나가는 차량들은 '빠방 빵 빵빵' 월드컵 경적을 울리며 삼성 우승을 자축했고 일부 중.고교생들은 삼성 깃발을 흔들며 연신 '최강 삼성'을 외쳤다. 또 경기장, 동대구역, 동성로 등에서 경기를 지켜본 시민들이 식당, 호프집 등으로 몰려가 우승을 자축하는 바람에 도심은 신명나는 잔치판으로 돌변했다.

이에 앞서 경기시작 5시간전인 10일 오전 9시부터 대구시민야구장에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몰려 우승에 대한 대구시민의 염원을 반영했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긴 줄을형성한 시민들은 1시간만에 입장권이 동이 나자 암표를 사기 위한 전쟁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암표마저 구하기가 쉽지 않아 많은 시민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오가 되면서 경기장 입장이 시작되자 경기장 앞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서로 먼저 줄을 서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오후 2시 경기가 시작되면서 그라운드는 온통 푸른 물결을 이루며 후끈 달아올랐다. 시민들은 일구일구에 탄성과 아쉬움을 연발했고 홈팀이 점수를 낼때마나 한마음이 돼 함성을 지르고 파도타기를 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지난 월드컵 경기때처럼 삼성라이온즈를 상징하는 대형천이 관중석 일부를 뒤덮으며 가을의 전설을 기원하기도 했다. 마침내 9회말 홈런 2방으로 기적같은 대역전극을 이뤄내자 시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얼싸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경기장은 시민들의 뜨거운 열기와 하늘을 붉게 물들인 폭죽으로 대낮처럼 환해졌고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돌며 끝까지 성원해준 시민들에게 큰 절로 보답했다.친구 10명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김태규(19.오성고 3년)군은 "태어나서 이렇게 기쁜 적은 없었다"며 "수능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은 동성로, 동대구역, 대학가 등지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포근한 휴일을 맞아 동성로를 찾은 시민들은 가던 길을멈추고 상점앞에 마련된 TV를 통해 경기를 관전했으며 일부 시민은 아예 자리를 깔고 앉은 채 경기를 시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동대구역 대합실에도 400여명의 시민들이 TV앞에 모여 삼성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간절히 빌었다. 시민들은 9회말 끝내기 홈런이 나오는 순간 너나할 것 없이 두팔을 치켜 들고 '만세'를 연호했고 옆사람과 얼싸안은 채 껑충껑충 뛰어 다녔다.

일부 시민들은 열차시각에 맞춰 개찰구를 빠져 나가다 삼성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TV 앞으로 되돌아와 감격적인 장면을 확인하고 열차를 타기 위해 성급히뛰어가기도 했다. 서울행 열차를 타기 위해 동대역을 찾은 김영수(49.달서구 두류1동)씨는 "너무나 기다렸던 우승인데다 너무도 극적인 승리를 해 목이 메인다"고했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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