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파일 이곳-증권사 객장

입력 2002-11-07 14:24:00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몇 번씩 왔다갔다 한다는, 그러면서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주식시장. 뭍사람의 한숨과 웃음이 교차하는현장중의 하나가 증권사 객장이다.사이버 거래가 활성화되면서부터 손님들이 줄었지만 그래도 객장을 거의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대부분 노년층과 중년 여성들이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거나 적당한 간격을 두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주식투자 경력 18년의 이모(50.대구시 서구 평리동)씨는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증권사 객장을 찾는다. 거래는 주로 집에서 하지만 한번씩 객장을 들르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외톨이가 된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고 한다. 객장에 나와 좋은 정보를 챙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자기처럼 돈 잃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주로 나눈다. 남의 실패담을 듣다보면 혼자만 당한 것이 아니라는 엉뚱한 자기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는 그동안 수억원을 까먹었지만 항시 대박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자신과 함께 주식을 시작해서 80년대 폭등장세에서 1억원으로 15억원을벌고 손 딱 털고 나간 이웃 사람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말은 '본전 정도만 건지면' 손을 떼고 자장면집에 충실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씨는 남은 밑천 기천만원마저 요즘의 천방지축 장세에 위태롭다며 초조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식해서 돈 번다는 것은 빈말이야. 그렇지만 도저히 억울해서 그만둘 수가 없어". 그의 표정엔 그래도 대박을 노리는 의지가 엿보였다. 오전 8시45분이면 어김없이 ㄷ증권사 객장에 '출근'하는 장모(70) 할아버지. 경력 8년째인 강 할아버지는 올초 대세상승기라는 여론에 휩쓸려평소의 투자패턴에서 벗어나 '몰빵'투자를 하다 1천여만원을 날렸다. 노후자금 중 상당부분이 날아가버려 자식들이 알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장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사업을 해선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주식투자는 아무리 잘해보려 해도 안된다며 "머리에 털나고 해본것 중에 제일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도 젊은 때 하는 것이지 나이 들어 돈벌겠다고 객장에 나오는 노인들은 그저 시간 때우는 것일뿐돈을 벌 수는 없단다.

"조금 벌었다는 사람도 운이 좋아서 번 거지 자기 재주가 좋아서 벌었다고 할 순 없어". 장 할아버지는 이날 반도체주가 오르길래 ㅋ사 주식을 몇주 샀는데 계속 매입가를 밑돌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칼국수나 보리밥 등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들어와 시세판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간다.

객장에서 만난 대학생이라는 한 젊은이는 2시간 이상 컴퓨터 앞을 벗어나지 않았다. 자취방에 인터넷을 넣기 전에 미리 연습을 한다고 했다.간혹 객장에 나온다는 중년 여성 2명은 "신랑이 알면 큰일나요" 하면서 신분 노출을 극히 꺼렸다. 낮은 은행 이자보다는 좀 더 벌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소득은 없고 속만 바짝바짝 탄다고 했다.

이들은 객장에 나와 앉아있지만 증권사 직원들의 조언을 별로 신뢰하지는 않는 편이었다.장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증권사 직원들 말만 믿다 손해보고, 두 번째는 소문듣고 하다, 세 번째는 지인들 말 듣고 하다, 네 번째는 이래도 저래도 안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다 쪽박 차는 거지".

ㄷ증권사 투자상담사 이모(36)씨는 "고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기다리면 더 싸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매수주문을 내고, 더 오를 줄 알면서도 팔게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토로했다. 약정고 실적 때문이다. 약정실적이 시원찮으면, 즉 밥값을 제대로 못하게되면 그들은 그날로 보따리를 싸야 한다. 모 증권사 경북지역의 한 지점은 실적이 부진해 지점장을 포함해 상당수 직원이 조만간 인사조치를 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돈다. 깔끔한 이미지로 비쳐지는 증권맨들의 이면에도 고달픔이 있다.

경력 15년인 ㄷ증권 대구지점 윤모(40) 부장의 본격적인 일과는 객장 손님들이 다 빠져나간 오후 3시45분부터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오늘 거래에 판단착오는 없었는가, 고객의 손익은 어떻게 됐을까 등을 우선 살펴본다. 물론 자신이 올린 약정고가 얼마인지 챙겨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 일이 끝나면 내일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고객도 이익을 보고 자기에게도 이익이 되는 거래를 위한 준비다. 이 준비는 회사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집에 가서도 해야 한다. 밤 사이 외국 주식시장 특히 미국 시장이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나는지 살펴야 한다. 다음날 장이 시작되는 시간까지 계속된다. 또 신규고객 및 예금 유치를 위한 외근활동도 하루 장이 끝나고 시작된다.

ㅁ증권 유통단지지점 김두찬(40) 지점장은 오전 7시10분쯤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조간 신문을 대충 훑어보고 8시에 아침 직원미팅을 주재한다.이 자리에서 전날 시황을 정리하고 밤 사이의 미국 시장 움직임 등을 기초로 한 오늘의 영업전략이 수립된다.

거래가 시작되면 지점장이라고 해서 일반 직원과 하는 일에 별로 차이가 없다. 김 지점장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손으로는 계속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객장에 나온 고객의 상담요청과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소화해 내야 한다. 하루 장이 끝날 때까지. 점심시간에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식사는 인근식당에서 배달시켜 해결한다.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것이 주가라지만 증권맨들은 '고객에게 추천한 주식의 그날 종가는 매입가격보다 높거나 최소한 같아야 한다'는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비록 내일부터 크게 떨어질지라도 오늘 종가만큼은 높아야 체면이 선다.

주식을 하다가 큰 손해를 본 사람들이 증권사 직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는 보도는 이들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든다. "내 계좌 알아서 잘 관리해주십시오"해놓고는 "직원이 마음대로 사고팔아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다니…. 그런 고객들과의 동거가 매일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객장이다. 욕심과 환성과 탄식이 어우러져 있다.

'개미'라고 불리는 개인투자자들. 그들은 자신을 결코 투기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돈을 벌겠다는 각오, 마음속엔 대박의 꿈을 한자락씩 깔고있다. 그래서 개미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들끓고 있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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