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서 의료봉사 대구출신 이규인씨-"인술의 의미 이제 알 것 같아요"

입력 2002-11-05 00:00:00

"전기가 없어 밤에는 환자들이 의료진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습니다. 수술할 때는 발전기를 가동해야 할 정도입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병이 아니라 식사를 제대로 못해 입원한 채 굶어죽는 환자들도 적잖습니다".

'기아의 나라' 르완다에서 인술을 펼치다 잠시 휴가차 고향 대구를 찾은 의사 이규인(54)씨의 이야기는 놀라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한번은 에이즈와 굶주림으로 사경을 헤매던 12세 소년이 병원에 왔으나 며칠만에 숨졌습니다. 저는 처음 그 소년이 50대 중년인 줄 알았습니다. 부모·형도 모두 에이즈로 죽는 바람에 치료는커녕 제대로 먹지도 못해 숨지고 만 것이지요".

산부인과 전문의인 그는 주로 임신부를 진료한다고 했다. 하루 평균 2명의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한다는 것. "수술 때 피를 흡입하는 기계가 낡아 거즈로 피를 닦아냅니다. 하지만 그마저 부족해 흥건해진 거즈를 짜 재사용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는 르완다에서 봉사하는 유일한 한국인 의사. 국내 국제봉사단체인 GNI(좋은이웃 사랑회)의 르완다 의료봉사단 일원으로 기타라마 지역 레메라루코마 병원에서 하루 9시간씩 환자를 돌봐 왔다. 계약 기간은 1년. 그러나 그는 잠깐 동안의 휴식을 끝낸 뒤 이번 주 부인(51)과 함께 다시 르완다로 간다고 했다. 봉사기간을 스스로 다시 1년 연장한 것.

이씨도 처음엔 경산에서 개원했었다고 했다. 그것도 18년이나 됐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갈수록 허전해졌고, 자기 희생이 부족한 때문임을 깨달았다. 드디어 2000년 3월, 그는 "나이 더 들기 전에 일을 저질러야 한다"고 결심해 병원 문을 닫았다. 음성 꽃동네에서 봉사했고, 녹색연합에 가입해 환경운동에도 참여했다. 작년 인도 지진 때는 현지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만난 것이 아프리카 의료지원 프로그램.

"휴가 와서 대구 동료 의사나 친구들로부터 '고생 많이 했다'는 인사를 듣습니다. 하지만 제겐 고생이 아닙니다. 식사 한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해 전에는 형식적으로 식사 기도를 했으나 지금은 진짜 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지난 1일 만났을 때 그는 매우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행 지난 정장이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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