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DJ정권의 '브루투스'들

입력 2002-11-04 15:16:00

브루투스의 칼앞에 쓰러졌던 시저마저 배신자는 미워했으면서도 배신자가 나의 적을 배신해주는 반역행위는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마치 사나운 짐승의 독도 필요한때가 있듯이 배신자의 협력이 필요할때 그의 악을 이용하는 동안은 반역자는 경멸하되 반역행위는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배신의 생리라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배신은 먼저 섬기던 주인의 힘과 권력이 다해가고 대신 새로운 주인이 더 강해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 나타난다. 그러한 배신의 생리를 두고 본다면 최근 두어달 남짓 남아있는 DJ정권의 안팎에서 갖가지 배신의 의혹과 조짐들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것은 당연하고도 예견된 일인지 모른다.

며칠전 민주당 노후보가 '국정원의 도청문제와 군사기밀 정보유출, 검찰의 상황과 여러기관의 광범위한 누수 등을 볼때 청와대가 통제력을 상실한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다'고 한것은 일부 권력기관 내부에서 정보유출등으로 적(야당)을 돕고 있다는 배신의 징후를 간접 시사한 대목이다.

전직 국정원장이 폭로 회견에서 '97년 대선 당시에는 거꾸로 안기부간부가 고급정보를 DJ선거캠프에 제공했었다'고 한 사실도 정보기관의 극소수 정치성 인물들의 배신을 증언한다.

이러한 불명예스런 정치권의 의혹제기 정쟁시비속에 정작 국정원 직원들은 '우리는 결코 브루투스가 아니다'고 항변한다.

국정원 정보가 한나라당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정치권의 의혹제기가 있은뒤 직원들의 출퇴근시 차 트렁크를 검색하거나 개인 서랍까지 뒤지는등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엘리트 정보요원의 자긍심을 건드리자 '줄서기나 정치개입은 높은자리 몇몇이 다 해놓고 애꿋은 직원들 심기만 건드린다'고한 반발은 일리가 없잖다.

L모 국정원 고위간부도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회창씨가 껌뻑 넘어갈만한 최고급 정보를 갖고 창(昌)캠프에 줄설수 있지만 안한다. 만약 내 위치쯤에 있으면서도 고급정보를 안흘려줬다고 대선 당선후에 목이라도 자른다면 그런 대통령 밑에서 안해먹으면 그만 아니냐". 그가 덧붙인 배신에 대한 논리는 이랬다.

이회창 후보든 정몽준, 노무현 후보든 그런 배신(정보유출 줄대기)과 악(정보)을 이용하고 배신자를 중용한다면 다음 정권 말기에는 필연적으로 또 다음 배신자가 줄이어 나타난다는 논리다. 지금 이런저런 폭로정보로 여당을 공격중인 한나라당이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다.

며칠전 노무현 후보 집에도 민주당 국회의원들 몇몇이 찾아와 '탈DJ 결단선언을 하라'고 강권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들이 만든 무슨 개혁신당 관련 전략이라는 문건에는 DJ정권의 과오를 정면 비판해야 영남표를 얻을수 있다는 주장 등이 들어있다고 했다.

DJ측 입장에서 보면 분명 일종의 배신처럼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어제까지 머리 조아리던 당내 의원들이 정권승계 후계자로 지목했던 여당후보에게 자신(DJ )을 비판하라고 요구하고 또 그렇게 하란다고 곧장 '통제력 상실'을 공개 비판한 후계자를 바라보면서 시저의 심정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반대로 97대선 집권무렵 당시 여당쪽의 배신자들로부터 줄서기와 반역 정보를 얻으며 이득을 봤던 업보를 집권말기에 자신이 되씹는 심경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더이상 그에게 집권의 시간과 권력의 파워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런만큼 더이상 그의 쇠잔한 등을 찌르는 브루투스들이 나와서는 안되고 나올필요도 없다. 밉든곱든 우리의 지도자와 나라의 장래, 그리고 맑은 정치의 미래를 위해 오늘의 배신이 내일의 배신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는 이제 끊을때가 됐다. 새로운 힘센 주인밑에서 한자리 안하고 쫓겨나더라도 배신을 않겠다는 절의(節義)가 브루투스의 정보보다 더 가치있게 보호될때 국가의 기강이 서고 새주인도 또다른 배신의 쓴맛을 맛보지 않는다.

정 후보에게 현대그룹 옛 가신의 주가조작 폭로설이 배신인지 아닌지는 재벌그룹 집안의 얘기니 알바 없다. 노 후보에게 오늘 탈당한다는 후단협 의원들의 탈당이 배신인지 아닌지 역시 알바 없다.

어쨌든 최근 잇따른 내부 폭로와 배신의혹 시비를 바라보는 많은 국민의 심경은 제발 추한 꼴 안보고 살자는 심정이리라 생각한다. 우리사회에 불신과 불의, 냉소가 가득차는 것도 염량세태, 추한 몰골의 브루투스들이 설치고 있는 탓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정길 본사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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