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노인에 천사의 소리

입력 2002-11-02 14:01:00

박윤도(가명.74.대구 대명동) 할아버지는 이달 들어 삶의 활력소를 얻었다. 좀처럼 벨이 울리지 않던 전화가 사흘에 한번꼴로 울고 있기때문. 가족이 없는데다 노인성 질환에까지 시달리지만 위로조차 해 줄 사람이 없던 할아버지에게 한 노인 복지모임이 '전화 친구'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외로운 게 힘들었어. 전화를 걸어 와 말벗이 돼주니 이만큼 기쁜 게 없어. 한달에 20여만원 받는 돈보다 전화친구가 더 반가워. 이젠 친해져서 반찬 떨어졌다는 얘기까지 해".

◇따르릉 해피콜= 박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드리는 사람들은 '효 안부전화 따르릉 해피콜'의 봉사자들. 이 프로그램은 지난 7월 대구 남구청과 민간단체들이 남구지역복지협의체를 구성, 홀몸노인에 대한 색다른 서비스를 시도키로 해 모색됐다. 불교사회복지회 산하의 남구 종합사회복지관, 햇빛 가정봉사원 파견센터, 노인상담전화, 그리고 대덕복지재단의 대덕 가정봉사원 파견센터, 더불어복지재단의 장애인복지센터 등 노인복지 관련 노하우를 가진 단체가 참여했다.

이 모임은 우선 8월 한달 동안 남구지역 홀몸노인 743명을 대상으로 생활 실태를 조사, 안부전화할 대상을 선정했다. 본인의 희망 여부나 건강 상태, 주위의 지지체계 등을 고려해 A(매일전화) B(주2회) C(주1회) D(월1회)로 대상을 나눈 것. 그래서 선정된 노인은 A등급 12명, B등급 55명, C등급 169명, D등급 129명 등 365명이었다.

이어 9월엔 안부전화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50여명의 자원봉사단이 결성됐고 일주일간의 교육이 실시됐다. '노인문제 전문가'가 된 자원봉사자들이 '전화 공세'를 시작한 것은 지난달 1일.

◇홀몸노인 어떻게 살고 있나?= 지난 한달간의 안부전화는 노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A등급 남이숙(68.가명.대명2.8동) 할머니는 고혈압.당뇨로 건강이 좋지 않지만 자녀들의 경제 사정이 좋지않아 혼자서 월 20여만원의 국가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텔레비전.세탁기.냉장고등이 낡아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 가장 불편하다고 했다.

같은 마을 A등급 임주옥(68.가명) 할머니는 아픈 것이 제일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허리.다리.머리 등 안 아픈 곳이 없고, 한밤중에 심한 고통이 덮치면 도움을 구할 길이 없다고 했다.

노인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 국민기초생활법상 국가가 주는 생계비를 증액받을 수 있는 방법, 또다른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길등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병원에 함께 가 줄 사람이 없는 것도 걱정거리.

대구시청에 따르면 시내 홀몸노인(주민등록 기준)은 지난해 말 현재 2만4천528명. 일년 전 2만114명에서 4천명 이상 늘었다. 이들 홀몸노인 중국가 보조금 수급자로 지정된 노인은 6천649명. 홀몸노인 상당수가 최소한의 경제적 생활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남구지역복지협의체는 자체 분류작업을 통해 주민등록상의 홀몸노인 중 절반 이상이 직계가족이나 부양의무자들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부양 의무를 기피하거나 자녀들의 형편이 나빠 부양을 꺼리면서 연락두절 상태에 놓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

◇지역사회 동참 필요= 외환위기 사태 이후 부양 기피 심화로 갈수록 늘고 있는 홀몸노인들에게 여태까지 국가와 사회가 해 준 것은 얼마 안되는 지원금이 고작이었다. 이제 이웃의 정을 전해주는 '관심 프로그램'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

노인들은 전화가 걸려와 얘기를 나누면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며 말벗이 생겨 너무 기쁘다고 했다. 안부전화 사업이 홀몸노인들의 다양한 욕구 발산 및 정서적 지원체계로서의 역할을 하고, '따르릉 해피콜'은 그래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이향란(43.여)씨는 "홀로 사는 노인들이 이렇게 많고 그분들이 가진 문제가 이렇게 다양한 줄 알고 많이 놀랐다"며, "홀몸노인들에게 나를 포함한 사회 전체가 그동안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구종합사회복지관 임우현 팀장은 "홀몸노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만한 서비스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안부전화 사업의 경우는 홀몸노인에 대한 지역사회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화를 통해 노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았으니 이젠 지역사회가 후원에 나서야 한다"며, "누구나 배우자를 잃은 후 자녀로부터 외면받는 날을 맞을 가능성을 갖고 있는만큼 홀몸노인 문제는 더 이상 먼나라 얘기가 아니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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