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코스닥...개미만 남았다, 작전 잇단 적발 신뢰 추락

입력 2002-11-02 00:00:00

증권업계 관계자 ㅇ(52.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씨는 모 코스닥종목에 투자했다가 혼쭐이 났다. 지난 5월 4만9천원대던 주가가 2만원대까지 떨어지자 그는 '싸다'는 생각에 지난 7월 이 종목에 수천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그가 주식을 산 뒤 얼마 안 있어 회사 대표가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 주가가 연일 하한가로 급락하면서 한달만에 4천원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정작 주가조작이 벌어진 시점은 지난해 상반기였는데도 주가조작 사건 수사라는 '후폭풍'에 휘말려 ㅇ씨는 원금의 4분의 3을 졸지에 날려 버렸다.

코스닥에 투자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겁나고 고통스런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고나면 등록기업이 도산하고 대규모 작전세력이 적발됐다는 소식이 끊일 날이 없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대다수의 '개미'(개인투자자)들은 본전 생각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차트 분석 전문가들은 코스닥시장의 지수 그래프에 대해 '큰손'(메이저급 투자자)이 떠나고 '개미'들만 남아 서로 치고 받는 폐허같은 모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www.cybergosu.com 대표 이선달 씨는 코스닥에 대해 "대부분 종목의 주가흐름이 이미 무너져 바닥을 논하기조차 어렵다"며 특히 "지난 3월25일 지수가 96 포인트대까지 오르면서 잔뜩 실어놓은 대기 물량 때문에 전도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거품의 위기 못지 않게 코스닥은 근본적인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수익을 내지도 못하는 부실기업의 재무제표를 위조해 우량회사로 둔갑시키는 사기극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터진 에이콘의 부도 소식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에이콘은 그동안 유보율 350%, 납입자본이익률 100%에 이르고 3년 연속 흑자를 낸 우량주로 '포장'돼 있었다. 또한 부도 전날에도 '올해 매출액 900억원, 지난해 3배'라는 호재성 뉴스가 버젓이 나올 정도였다.

에이콘 부도 소식을 접한 한 개인투자자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최근 거래량을 볼 때 주도자들은 며칠 계속되는 호재성 기사를 띄워놓고 자신들의 물량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백주대낮의 사기극"이라고 개탄했다.

부실 등록기업의 연말 자금대란설도 나돌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코스닥에서는 코닉스, 심스밸리, 소프트윈 등 4개 업체가 자금난으로 도산한 것을 비롯해 올들어 모두 8개 등록업체가 무너졌다. 지난 99년엔 1개, 2000년엔 4개, 2001년엔 2개에 불과했다. 부실 코스닥기업들은 등록 당시 확보한 자금이 이미 바닥난데다 대부분 금융권 차입.증자 등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지난 상반기 전체 코스닥기업의 33%가 적자를 냈고 벤처기업 가운데에서는 41%가 이익을 내지 못했다는 통계도 있다.

www.dals.co.kr 대표 김경수(필명 초생달)씨는 "작전과 유동성 위기로 망가져 버린 코스닥에는 또 하나의 공포가 숨어 있다"며 "상당수 종목의 경우 전환사채 물량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호.악재를 떠나 수급적 측면으로 볼 때도 대기 매도 물량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투자가 개인 책임 아래 이뤄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코스닥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수많은 국민들의 주머니를 거덜낸 데는 현 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 일반투자자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벤처만이 살길'이라며 붐을 조성해 국민들로 하여금 코스닥에 투자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끼도록 만든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이 코스닥시장 침몰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