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에히메현 뱃길여행

입력 2002-11-01 14:08:00

비행기로 떠나는 하늘 여행과 유람선으로 떠나는 뱃길 여행. 어느 쪽이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바쁘게 떠났다가 바쁘게 돌아오는 비행기가 제격. 하지만 목적지가 일본이라면 조금만 더 시간을 내 뱃길 여행을 떠나보자. 비행기보다 여유도 있고 푸근함도 있다. 그래서 일본 히로시마와 에히메현으로의 뱃길 여행은 늦가을 속으로 떠나는 낭만여행이다.

◆히로시마

처음 보는 히로시마항은 낯이 익다. 항구를 둘러싼 건물들과 야트막한 산까지 겉모습은 우리나라 어느 항구 도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나가사키(長崎)와 함께 세계에서 두 곳뿐인 원자폭탄 투하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도심에 자리잡은 평화기념공원에 가면 원폭의 참상을 볼 수 있다. 피폭 당시의 모습 그대로 뼈대만 남은 건물인 원폭 돔은 옆의 현대식 건물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아픈 과거를 말해준다. 기념자료관에는 피폭시간인 8시15분에 멈춰버린 시계를 비롯, 폭풍에 의해 비틀린 철문, 녹아버린 병, 검게 타버린 도시락 등 피해자들의 유품이 진열돼 있다.

공원 한쪽엔 한국인 원폭희생자위령비가 쓸쓸하게 서있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군인, 군속, 징용을 포함해 약 10만여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그중 희생자는 2만여명. 일본인 희생자들과는 달리 아직 제대로 보상조차 받지 못한 한이 서려 있다.

과거의 아픈 생채기 때문일까. 넓은 면적과 푸른 숲에도 불구하고 공원이 슬퍼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당시 풀 한 포기조차 살 수 없었던 피폭지를 지금은 완전한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히로시마에서 연락선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미야지마(宮島)의 이쓰쿠시마신사도 들러볼 만한 곳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참배로 말썽인 야스쿠니신사(2차대전 전범들과 청일전쟁이후 전사한 병사들을 모셔두고 있다)와 달리 이곳은 일본 건국신을 모신 신사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바다위에 떠있는 붉은 토리이(鳥居;신사의 입구를 나타내는 표시)로 유명하다. 200여m나 되는 붉은 나무마루를 따라 걸으며 보는 해안선 풍경은 왜 이곳이 일본 3대 경승지 중 하나인지 실감할 수 있다.

◆에히메현

섬의 나라 일본을 제대로 느끼려면 역시 국내 유람선여행이 최고다. 히로시마항에서 배를 타고 시코쿠(四國)의 마쓰야마(松山)로 향한다. 배 앞머리에 앉아 일본의 한려수도라는 세토내해 쪽을 보며 가노라면 여정이 전혀 지겹지 않다. 2시간 40분이면 온천과 성곽도시 에히메(愛媛)현 마쓰야마에 도착한다.

마쓰야마 페리 터미널에서 30분 정도 가면 도고온천지대. 도고온천은 일본에서도 가장 오래된 온천이다. 이곳의 많은 욕장 중에서도 1894년에 건축된 도고온천본관은 여행객들의 필수 관광코스. 고풍스러운 목조건물인 이곳엔 일본 유일의 일왕(日王) 전용욕장인 유신덴(又新殿)이 있다.

오쿠도고유원지엔 열대분위기가 나는 정글온천이 유명하다. 노천탕과 자갈목욕탕 등 10여 종류의 욕탕에서 수질을 비교해가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게 장점. 일본여행이 가져다주는 피로를 단번에 녹여버릴 수 있는 곳이다.

에히메현의 중심도시 마쓰야먀 시내에 있는 성도 둘러볼 만한 곳이다. 마쓰야마 성은 전국시대의 무장 가토 요시아키가 조선 침략의 공을 인정받아 1602년부터 25년에 걸쳐 축성한 성이다. 도심 속의 공원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성의 꼭대기 천수각에 오르면 멀리 세토내해 등 탁 트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섬과 섬을 지나 에히메현과 히로시마현을 연결한 니시세토 자동차도로는 60㎞의 해상도로다. 세토내해의 크고 작은 9개의 섬들을 10개의 다리로 연결한 이 도로로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다. 푸른 바다와 섬들의 빼어난 경관이 끝없이 이어진다. 낙조와 어우러진 구루시마해협 대교는 장관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일본 수군의 본영이 위치했던 곳이다.

3개의 현수교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 오미시마(大三島)로 들어가면 일본 수군의 오야마즈미(大山祗) 대신을 모신 오야마즈미 신사가 나타난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직접 썼다는 '大日本'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을 비롯, 일본의 침략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교통 및 패키지여행 상품=지난달 21일 부산과 히로시마 바닷길을 잇는 은하호가 처음으로 취항했다. 오후 늦게 출발, 다음날 아침 목적지에 도착한다. 부산 출발 월수금. 요금은 2등실 왕복 14만2천500원, 특등실 왕복 30만4천원. 문의 부관페리 부산본사(051-464-2700).

옛 부관페리호를 리모델링해 재투입한 만큼 배가 조금 낡은 것이 흠. 일본전문여행사 여행박사(053-421-9989)에서 매주 월요일 출발 4박5일 상품(일본내 호텔 2박·식사 포함)을 49만9천원에 출시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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