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숨이 콱 막히고 머릿속이 멍해지는 고추의 매운 맛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다. 무심코 베어 문 고추의 맛이 순간적으로 입을 얼얼하게 만들면서 코, 눈으로 번져 모든 감각기관을 마비시키고, '맵다'는 말조차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눈물만 쏟게 하는 그런 경험이다.
'고추, 그 맵디매운 황홀'(뿌리와 이파리 펴냄, 326쪽, 1만3천원)은 인도출신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지 기자인 아말 나지가 펴낸 고추이야기다.
대체로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고추나 후추, 마늘 등의 매운 맛에 고개를 가로젓지만 인도는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또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고추과의 식물은 맵지 않은 피망에서부터 가장 매운 것으로 알려진 아바네로(멕시코 고추)까지 1천600여가지에 이르는 것을 보면 매운 맛을 즐기는 민족들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릴 적 고추더미에 숨어있는 코브라에 놀라-지은이의 친척은 코브라의 독이 고추를 맵게 한다고 겁을 준다-고추를 싫어하게 된 지은이는 북아일랜드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우연히 한 식당에서 흘러나온 매운 냄새에 이끌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고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다소 광적일 정도로 고추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런던의 친구에게 부탁해 고추를 공수받고, 온갖 요리에 고추를 넣어보고, 고추의 역사를 살피고, 미국·멕시코 등 더 맵고 맛있는 고추를 찾아 기행을 한다.
그 속에는 매운 맛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인 우리도 생소한, 그러나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유명 지휘자인 주빈 메타는 고추를 성냥갑에 넣어 다닐 정도로 고추없이는 식사를 못했고, 민중벽화가인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는 벽화에서 고추씨가 발견될 정도로 고추애호가였다.
고추는 용도도 다양해 고추에 불을 질러 침략자들의 눈을 일시적으로 멀게하거나(잉카족), 반란을 일으킨 노예를 붙잡아 고추로 눈을 문지르고(서인도제도), 갓 태어난 아기에게 고추를 으깨어 발라 두어 세상에 태어나는 신고식을 치르는곳(라이베리아 그레보 족)도 있었다.
또 현존하는 가장 매운 고추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마야족들이 애용하는 아바네로. 이들은 아바네로로 소스를 만드는데 이것을 먹으면 워낙 매워 코 끝이 개처럼 축축해진다고 해서 마야언어로 '개코'라는 뜻의 '스니펙'으로 불린다. 이밖에 매운 맛을 가라앉히기 위해 물을 한 잔 먹어야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북인도의 '아케 로타 고추', '베르데' 고추를 좋아해 도시 이름조차 고추이름을 딴 과테말라의 산 마르틴 칠리 베르데 등도 있다.
우리나라의 고추에 대해서는 '한국사람도 고추를 좋아하고 말린 고추는 김치를 만드는 데 필수품'이라고 단순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불만이지만 '탁월한 고추 저널리스트'(로스앤젤레스 타임즈), '정말 맛있는 이야기'(뉴욕 타임즈)라는 찬사에 걸맞게 이 책은 고추에 관한 한 모든 이야기를 한꺼번에 모은 '맛있고 매운 책'이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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