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살로메〈포항시 연일읍〉
어머니는 아직도 혼수방에 나가신다. 그 곳에서 당신은 노년의 뜰을 한땀한땀 가꾸듯 삯바느질을 하신다.
칠순을 훨씬 넘긴 어머니께 바느질은 벅찬 노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식을 어느 누구도 애써 그것을 말리지 못한다. 어머니의 손끝이 평생 부지런함과 친구 사이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 여생의 활력을 위해서라도 작은 뜰을 가꾸듯 소일거리가 있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는 일터까지 꼿꼿하게 걸어다니면서 자식들에게 당신 건강을 증명해 보이곤 하신다.
그 해 봄, 혼수방으로 바느질 나간 어머니의 배웅은 노환으로 힘드신 아버지 차지였다. 이른 아침을 드신 어머니가 집을 나서 지름길인 방죽 계단을 올라선다. 겨울 뜰에 남겨진 앙상한 대같은 아버지가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 방죽길로 따라 나선다.
둑방 아래 금호강에서는 풀헤친 여인의 속치마처럼 물안개가 솟아 올랐다. 어머니는 물안개에 떠밀리듯 방죽길을 잰걸음으로 갔다. 어머니가 안개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어여 들어가라' 는 손사래를 치곤 했다.
연민과 구차함이 뒤섞인 채, 이런 익숙한 아침 풍광을 지켜보던 나는 은밀한 가출을 꿈꾸곤 하였다. 원하던대로 결혼을 하면서 집을 떠날 때, 병든 아버지는 우셨지만 나는 웃었다.
막내인 나를 마지막으로, 우리 오남매는 콩깍지를 벗어난 콩처럼 통통 분가를 하고 새로운 식솔들을 거느렸다. 일 나간 어머니가 없는 온 낮을 아버지는 혼자 견뎌내야 했다. 그때 아버지의 기침소리는 잦고도 깊었을 것이다.
지루함을 견딜 수 없을 때, 아버지는 노구를 이끌고 바로 집 앞 방죽으로 올라갔다. 그 곳은 또 다른 아버지의 뜰이었다. 아버지는 멀리 강물을 바라보곤 했다. 오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강물 위로 종달새가 낮게 날아다녔다. 아버지는 방죽 위에 쪼그리고 앉아, 까불대는 종달새의 생기발랄한 지저귐을 부러운 듯 바라보곤 했다.
아버지가 그 해 마지막 이승의 봄날을 아버지의 뜰에서 적요와 쓸쓸함으로 버텨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주 안부전화조차 드리지 못했다. 신혼의 까닭없는 설렘을 칙칙한 아버지의 일상과 희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스럼 저녁 긴 방죽을 따라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마중하러 방죽 위로 올라간다. 멀리 도심의 화려한 불빛을 지고 어머니가 돌아오신다. 아카시아꽃잎처럼 머리에 매달린 몽실몽실한 솜먼지가 어머니 노동이 얼마나 고되고 또한 아름다웠는지를 말해준다.
아버지는 아무렇게나 피어난 솜꽃을 어머니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떼내준다. 마치 꽃 지고난, 겨울 뜰의 마른꽃 한 쌍처럼 보인다.
아버지는 그 해 봄을 넘기지 못하고 수선스러움도 없이 고요하게 돌아가셨다.친정집을 둘러보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버지가 남긴 흔적들이 좁을 뜰 곳곳에 보인다. 담장 밑을 직접 파고 심은 넝쿨장미는 온 담장을 휘감고 지붕까지 뻗어 있다. 방죽 위, 당신만의 뜰에서 쪼그리고 앉아 캐냈을 유두화는 어김없이 여름이면 붉은 꽃잎을 말아 올린다.
지천에 널려있던 나팔꽃씨를 받아 화분에 키우던 분도 아버지셨다. 그 나팔꽃씨는 봄이면 싹을 틔워 옥상 난간을 휘감는다. 나팔꽃이 얼마나 순하게 싹을 틔우는지 아버지를 통해서 알았다.
아버지가 안계시는 지금도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신다. 당신의 신성한 노동의 뜰에서 잠시 지치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추억해낼 지도 모른다. 방죽 위, 쓸쓸했던 아버지의 기다림과 작은 뜰에서 나팔꽃의 새순을 틔우던 아버지의 손길을 기억하며 말없는 미소를 지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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