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가 우리에게 해주는 약속들을 듣다보면 부아가 치밀 때가 많다. '스무살의 머릿결로 돌아가게 해주겠다' '스무 살의 피부를 유지시켜 준다' '스무살의 치아를 팔십까지' 등등 스무 살을 인생의 기준인 것처럼 내세워 나이든 사람 괜히 기죽게 만들고 가뜩이나 재미없는 세상을 더 시큰둥하게 만든다.
TV도 은근히 괘씸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드라마라도 볼라치면 온통 꽃다운 이십대의 이야기뿐이다. 이십대가 아니면 아름다운 사랑도 못해보고 백혈병처럼 왠지 신비롭고 비극적인 병에도 못 걸린다.
서른 넘어서는 인물이 주인공이 되려면 불륜을 저지르거나 '아줌마'의 장진구처럼 몰상식한 사회지도층이 되어야 한다.
아플 때도 췌장암 같은 분위기 없는 병에 주로 시달린다. 음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청소년 가수뿐이고 삼십대 이상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노래가 그리우면 목돈 내고 디너쇼를 가든지 작정하고 큰 음반가게를 뒤져야 한다.
이십대가 아름다운 세대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유학시절 한 덩치 하는 미국 항공사의 아줌마 승무원이 휙휙 던져주는 샌드위치를 얻어먹다가 우리 나라 항공사의 꽃다운 승무원이 권하는 커피를 받아들면 같은 여자인데도 그 아름다움에 눈물이 핑 돌았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배양효과' 라는 게 있다. 뭐냐하면 TV나 영화 같은 데서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제시하면 보는 사람들은 그게 세상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거다.
미국의 학자들은 TV 드라마에서 강도나 살인 같은 폭력 범죄를 많이 보여주면 주야 장창 TV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참 위험한 곳이구나. 밤에는 외출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실제로 관찰하였다.
지금처럼 TV 광고나 드라마에서 이십대가 빛나는 나이라고 반복적으로 제시한다면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젊음=아름다움, 바람직함'이라는 등식이 은연중에 성립될 것이고 주름살 뒤에 숨은 지혜나 연륜의 아름다움은 잊게되기가 십상일 것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원조교제 사건이나 띠동갑 연하를 찾는 주책없는 신랑 후보자들 뒤에 있는 것은 이십대에 집착하는 우리 대중문화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양정혜(계명대 교수.광고홍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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