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삶...온몸 불사른 예술혼

입력 2002-10-25 14:14:00

만약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면서 늙고 병든 모습을 보인다면 어떨까. 과연 그가 아직까지 '할리우드의 전설'로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오스트리아의 천재화가 에르곤 쉴레(1890∼1918)같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끊임없이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예술적인 감동 보다는 불꽃같은 삶, 비극적인 최후 같은 드라마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절'(효형출판 펴냄)은 젊은 나이에 죽은 한국화가 12명의 삶과 예술을 다루고 있다. 저자 조용훈(청주교육대 교수)씨는 "창조적 에너지를 섬광처럼 발산시키고 완벽하게 소모시킬 때 비로소 자의식을 완성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고 요절화가들을 정의했다.

애절한 사랑끝에 자멸한 이중섭과 손상기, 여류화가 나혜석과 최욱경, 암울한 현실을 뛰어넘은 윤두서 오윤 류인, 고독하게 예술적 성취를 이룬 이인상과 전기, 한국화를 풍요롭게 한 구본웅 이인성 김종태 등이다. 이들 중 잘 알려져 있지 않는 화가 몇사람의 삶을 살펴보자.

▲꼽추화가 손상기(1949~1988)='돌출된 가슴뼈, 외봉낙타처럼 생긴 등, 5척에도 못미치는 키…' 지독한 열등감을 예술적 정열로 승화시킨 화가다. 고향 여수에서 상경, 가난한 무명화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첫사랑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80년대 중반 추악한 사회의 이면을 모던하고 서정적으로 담아낸 그림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 불과 몇년간의 화려한 작품활동을 벌인다. 80년대 후반 심부전증을 앓으며 투병생활을 하다 세상과 싸웠던 외로운 영혼은 영원한 휴식을 얻는다'그는 비록 반지하에서 낮게 살고/아득한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아내를 맞아들이고/두딸을 낳았으나 아프지는 않았다/ 그는 비록 곱사등을 지우지 못하고/저의 슬픔을 다독거리지 못했으나/끝내 저의 몸을 아픔 속에 맡겨두지는 않았다…(중략)' 이성부의 '손상기를 회상함'

▲불타는 열정의 여류화가 최욱경(1940~1985)=최욱경은 선구적인 여류화가였다. 오랜 미국 유학생활, 화려한 귀향, 교수 생활(영남대, 덕성여대)…. 일견 화려한 삶을 살았던, 전혀 부족할 것이 없었고, 예술적 감각을 국제적으로 검증받은 화가였다.

그렇지만 그의 내면은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찼다. 자기세계를 뚜렷하게 견지했던 개성, 세상을 자신의 색채로 해석하고 소유해야 직성이 풀렸던 열정의 소유자였다. 한국적인 생활과 관료적 학교생활에 맞지않아 '지하생활자' 마냥 스스로 사회로부터 격리되길 원했다. 85년 여름 세상과의 고단한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회적 반항아 류인(1956∼1999)=45kg의 삐쩍 마르고 야윈 몸, 커다란 눈망울의 소유자였던 그를 놓고 동료들은 사회적 문제아로 평했다.

약속시간은 깨기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작품 재료는 탈취의 대상이며, 담당한 강의는 결강에서 그 의미를 찾았다. 예절과 매너, 도덕적 책무는 혐오대상이었다.

그렇듯 그의 조각은 잘리고 가혹하게 찢겨진 인체의 파편을 표현, 관람자에게 묘한 슬픔과 비애를 던져줬다. 기존 사회에 대한 반항의식이 절망과 고통의 형상으로 작품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청년기때부터 승승장구한 그에게 하늘은 천재적 재능을 부여한 대신 목숨을 앗아갔다. 44세의 나이에 간경화로 사망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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