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農心마저 울린 '누더기' FTA

입력 2002-10-25 14:50:00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우여곡절 끝에 타결돼 내년중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지역경제블록 외톨이 신세는 면하게 됐지만 협상 과정에서 노출된 숱한 문제점을 지켜본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양국간 관세와 무역장벽을 없애는 것이 목적인 FTA 본래의 성격이 퇴색할 정도로 숱한 조건이 붙은 '누더기' 협상을 보면서 이런 외교통상 수준으로 어떻게 '세계화'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정부는 막판 쟁점이었던 금융시장 개방 문제는 이번 협정에서 제외하되 4년 후에 다시 논의하는 조건으로 결국 물러섰다. 따라서 부처간 조율이 안돼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가며 마치 구걸하듯 체결한 FTA '제 1호'를 우리는 냉정하게 심판해야한다.

먼저 정부는 칠레에 이어 일본·멕시코·싱가포르 등과도 FTA 협상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라고 하나 '첫 단추'부터 잘못끼워 미숙과 약점을 드러냈으니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제 목소리 내기가 힘들어 질 것이다. 또 경제적인 손익 계산은 뒷전이고 현 정부의 '실적 올리기'식으로 서두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특히 사후 대책이 미흡했다는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칠레와의 FTA체결은 우리 공산품에는 절대 유리하지만 농업은 큰 타격을 입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농업부문은 "당장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억지 설명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벌써부터 농민단체들은 "국내 과수산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협상타결에 반발, 국회비준 거부운동을 벌이고 있으니 농심(農心)을 제대로 읽지못한 것이 아닌가.

FTA는 거역할 수 없는 국제적 흐름이다. 그러나 아무리 실보다 득이 많다하더라도 피해 부문에 대한 이렇다할 대책없는 건수(件數)위주의 체결은 안된다. 국내 여론도 잠재우지 못한 국제 협상은 비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농민 피해 최소화 대책부터 마련해놓고 FTA를 체결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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