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줄이니 인력난도 풀렸어요"

입력 2002-10-25 12:13:00

대구.경북지역 노동행정 기관들은 이 지역의 높은 산업재해율 때문에 고민이 많다. 최근 4년간 재해율 증가세가 전국 평균보다 무려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난 것. 이런 상황은 지역에 영세한 기업이 많아 빚어지는 구조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형편이 어렵다며 사용자 대다수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투자를 꺼린다는 얘기이다. 그러다보니 또다시 산재 피해자가 많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그러나 달성공단 자동차 부품회사인 ㈜대광공업은 전혀 다르다.

이 회사 역시 근로자가 50여명밖에 안되는 소기업. 하지만 대광공업은 최근 산재 예방사업을 지원하는 산업안전공단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작업 환경을 바꾸라고 지적받자말자 '두 말 않고' 바꾼 것.산업안전공단측이 지난해 작업 중 생기는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한 정화장치를 갖춘 배기시설을 설치하라고 하자 김경기(50)사장은 필요한 시설을 그 즉시 갖췄다. 2천여만원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투자였다. 작업장 내 배기시설이 필요한 것은 냄새때문.이 회사는 가공 기계마다에 소음기도 꽂아놨다.

공장 소음에서 근로자들을 해방시키자는 것. 그 이후 산업안전공단 측정 결과 나타난 작업장 내 소음도는 80데시빌(Db) 정도였다. 공장이라 느끼기 어려울만큼 낮은 수준.근로자들이 서서 작업하는 작업장 곳곳의 바닥에는 내충격성 바닥재가 깔렸다.

이걸 깔면 피로가 훨씬 감소한다.이 시설에는 300여만원이 들어갔다. 이렁저렁하여 근로자 50여명뿐인 이 조그만 공장에서 산재 예방을 위한 투자에만도 억대의 돈이 들어갔다. 덕분에 지난 5월엔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으로부터 '클린사업장' 인증을 받았다. 산업재해 요인이 상당 부분 없어졌다는 표시.

이다지 열심인 대광공업의 산재 예방 투자는 김경기 사장으로부터 비롯됐다. 김 사장은 공고를 졸업한 뒤 15년여 동안 '공장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 과정에서 공장 종사자의 '비애'를 알았다는 것."저는 도금이 전공입니다.

1970년대 당시 도금 공장을 상상하면 끔찍합니다.크롬 도금을 오래한 근로자들 중 상당수는 코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얼마나 독성이 강한지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산재에 관심 가져 주는 사람은 누구하나 없었습니다. 저도 숱하게 병원을 드나들었습니다. 제게는 다행히 큰 질환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당시 대다수 근로자들은 산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습니다".

김 사장은 1990년에 봉급자 생활을 끝내고 종업원 5명과 함께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당시 대우기전(현 한국델파이) 내 도금라인이 일터.그러나 신출내기 사장이어서였을까? 근로자 2명이 잇따라 기계에 손가락을 다쳤다.

"제 나름대로 기계에 안전장치를갖춰 놓는 등 최선을 다했는데도 사고가 납디다. 그때 다친 근로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근로자들 스스로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점도 발견됐어요. 하지만 저는 근로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내가 더 신경 쓰자고 다짐했지요".김 사장은 1999년에 현재 위치로 공장을 옮겼다. 그리고는 각종 재해예방 시설을 갖추고 재해율 0%에 도전했다. 덕분에 현재까지 다친 근로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이같은 산재 예방 투자는 메아리 없는 돈 날리기일 뿐일까?

"사용자 입장에서는 산재 예방 투자가 바로 '생 돈' 먹는 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예방 시설을 갖춘다고 해서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해야지요. 장기적으로 보면 결코 손해도 아닐 겁니다". 김 사장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창업 후 3년여 동안 '근로자들이 일하기 편한' 환경을 갖춰 온 덕택에 김 사장의 공장엔 지금 인력이 별로 모자라지 않는다.

대구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달성공단에 있는데다 3D업종이라는 선입견이 영향을 미칠 여지도 없잖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쓸 필요도 없다. 생산직 인력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세태이지만 이 공장엔 내국인 근로자가 끊임없이 수혈되고 있는 것.

"클린 사업장으로 만들어 놓으니 이직률이 떨어집디다. 5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전체의 30%에 이릅니다. 저는 입사 지원자가 오면 회사 구경부터 시킵니다. 깨끗한 걸 보면 절로 오고 싶은 기분이 들겠지요. 사용자들이 이익을 조금씩만 쪼개 꾸준히 투자하면 언젠가는 확 달라진 공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좋은 작업 환경의 첫 조건은 청소라며 김 사장은 시간만 나면 자신이 먼저 빗자루를 집어 든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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