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기 쉽고 듣기 좋게 짓는 것이 이름 짓기의 기본 원칙이나 지나치면 무리를 빚게 마련이다. 옛날에 아명(兒名)은 반상(班常)을 가릴 것 없이 좀 천박스럽게 짓는 게 상례였다. 그래야 병 없이 오래 산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조선조의 고종은 아명이 '개똥'이고, 황희 정승은 '도야지'였다. 사대부 집안은 성년이 되면 관명을 받게 됐지만, 그렇지 않은 집안에선 아명을 그대로 쓰거나 성도 없는 토박이 이름을 쓰기도 했다. 개동(介東).소동(召東).마동(馬東) 같은 이름이 흔하고, 마당에서 태어나 마당쇠로 불리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례나 관습을 무시하고 독특하고 예쁜 순우리말 이름을 지어주는 바람이 만만찮다. 아름.아름누리.새아름.새난슬.나리 같은 아름다운 한글 이름이 어린이 이름의 10% 이상을 차지한다는 통계도 보인다. 그 결과 수없이 많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생겨 혼란의 소지가 커지고 있으며, 이름이 같은 점을 악용할 가능성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요즘 어떤 이유로든 이름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다 한다. 특히 초등학생들에게는 그런 사례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법원에 제출한 사유를 보면 대체로 몇 가지로 집약된다. 이름을 부를 때는 좋으나 성을 붙여 부르면 나쁜 뜻으로 들리거나, 또래들이 이름자에 나쁜 뜻으로 몇 마디를 덧붙여 놀리는 경우, 악한 사람의 이름과 같아 생활에 불편이 따르는 경우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성인들도 운이 트인다는 등의 작명가의 말을 믿고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최근 중국.일본 등 한자 문화권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순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바꾸거나, 나이가 들어서는 놀림거리가 된다는 등의 이유로 한자 이름으로 바꾸는 역현상도 만만찮은 모양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개명 신청이 해마다 10% 가량씩 늘어나고 있으며, 올해는 8월 현재 2만9천645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는 한자 이름으로 바꾼 건수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지난 9월 한 달간 서울가정법원에서만 10명이 한자로 바꾸도록 허가했다 한다.
▲일제 시대의 창씨개명(創氏改名)은 우리 민족의 엄청난 비극이었다. 무지막지한 강압책을 동원해 뿌리마저 짓이겼다. 그런 비극적 사례를 빼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이름이 갖는 의미가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 없다. 그 때문에 이름은 신중하게 잘 지을 필요가 있다. 맹자(孟子)는 '한번 악명을 얻으면 효자나 자신을 사랑하는 후손이 아무리 나오더라도 백세토록 고치지 못한다'고 했던가. 자신의 이름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며,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될는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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