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꾸리는 '황혼의 삶' 부양가족 없어 폐지수집 생계노인들 늘어

입력 2002-10-16 15:30:00

지난 14일 오전 6시쯤 대구 남산4동 동사무소 부근 구불구불한 골목길. 한 사람 겨우 지나다닐만 한 골목 곳곳에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종이 줍기로 새벽을 열고 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이어지는 풍경.

대명3동에 산다는 올해 칠순의 박기순 할머니는 이 동네까지 훑는다고 했다. 해뜰 무렵쯤 할머니는 차곡차곡 모은 폐지를 마을 어귀의 재활용 공장에 넘겼다. 저울 눈금이 40kg을 왔다갔다 하는 사이 얼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다행히 오늘은 개시가 좋은 편. kg당 40원이지만 인심 좋은 사장이 400원을 더 얹어 대금으로 2천원을 쥐어줬다. 표정 없던 할머니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흘렀다. 할머니는 돈을 허리춤 깊숙이 찔러넣은 뒤 손수레를 끌고 다시 언덕길을 내려갔다.

"새벽 5시쯤 눈을 뜨면 '오늘은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지. 몸이 아파도 매일 나와야 해. 그래야 먹고 살아. 그렇게 하면 이만큼씩 모아 하루 3, 4차례 고물상에 넘길 수 있지".

박 할머니의 종이줍기 생활은 어느날 문득 시작됐다고 했다. 몇해 전 둘째 아들이 군에서 다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된 데 이어 장남마저 올해 초 전기 배선공사 중 추락사한 것. "다 늙어 자식 득 보고 사는 노인들이 부럽지. 자식을 먼저 보내게 한 세상도 원망스러워".

작은 손수레에 신문지와 종이상자를 싣고 고갯길을 오가던 노인들이 잇따라 재활용센터로 찾아 들었다. 최종팔(74·대명3동) 할아버지는 아들이 IMF사태 때 사업에 실패하고 집을 떠난 뒤 중고교에 다니는 손자·손녀 학비를 대기 위해 폐지·고철 수집에 나섰다고 했다.

채기태(67·남산3동) 할아버지는 연탄가게를 하고 있지만 연탄 사용 가정이 점차 줄어 주업이 재활용품 수집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 동네 재활용공장 강영옥(45) 사장은 "매일같이 리어카나 손수레로 폐지를 모아 오는 노인들이 10명을 넘는다"며 "이들 대부분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골목골목을 다닌다"고 했다.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혹은 소일 삼아 폐지를 모아 파는 노인들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당수는 폐지에 생계를 기대는 노인들. 이 마을에선 지난 겨울 한 할아버지가 종이를 한 장이라도 더 줍기 위해 새벽 1시쯤 리어카를 끌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적도 있다고 주민들이 전했다. 종이 줍는 노인들에게도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쟁인 것.

김씨(69) 할머니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집 앞에 폐지를 모아 내 놓거나 만나면 상자를 건네주는 상점 주인들이 있었지만 요즘엔 하루종일 걸어도 종이 모으기가 쉽잖다고 했다. "종이를 못가져 가게 문을 닫아 걸거나 심지어 폐지 도둑으로 몰 때도 있어. 서러워 속으로 눈물 흘릴 때가 많아. 그래도 어쩌겠어? 살기 위해선 종이를 주워야지".

못사는 사람이 늘면서 종이를 주우러 나서는 사람이 늘어 이제는 하루 1만원이라도 손에 쥐려면 남 앞서 부지런히 다니고 경쟁을 벌여야할 형편이라고 했다. 게다가 지난해 봄부터는 외국의 값싼 폐지들이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종이 값이 절반 정도로 떨어져 노인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들은 닥쳐오는 겨울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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