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칼럼-지방분권과 재원의 배분

입력 2002-10-14 15:18:00

최근 행정개혁의 과제 가운데 빠짐없이 등장하는 과제의 하나에 지방분권이 들어있다. 지방분권은 중앙집권 시스템의 폐해가 노정되는 가운데 국가와 지방을 포함한 구조개혁을 통해서 지방자치단체가 자주적으로 스스로의 책임아래 지역주민의 복지를 최대로 증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행정환경의 정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방으로서는 이 과제의 추진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동안 지방자치의 실시이래 중앙과 지방의 공통적인 노력에 의해 중앙으로부터 지방으로의 권한이양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제의 추진에 있어서는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할 세.재정시스템의 개혁을 제쳐놓은 채 별로 마찰이 없는 분야만을 대상으로 하여 추진하였기 때문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란 어렵게 되었다.

진정한 지방분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의 책임하에 업무를 집행해나갈 수 있는 세.재정시스템의 개혁이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가지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자체재원의 확충을 위한 세원의 재배분과 그 운용의 자율성의 확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지방재정제도하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필요경비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보장하고 있다. 즉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활동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에 대해서는 지방의 자체재원으로 충족할 수 없는 부족분에 한해서 지방교부세로 보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생활수준에 비유한다면 비바람을 겨우 피할 수 있는 초라한 집에서 값싼 옷가지를 몸에 걸치고 소찬의 세끼 식사로 겨우 연명해 갈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더 잘 사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은 재원의 빈곤으로 허덕이고 있다. 파탄 직전에 놓인 단체도 없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의 이러한 곤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기본적으로 안정적이고도 신장성이 있는 양질의 세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분가하는 아들에게 산골의 다랑논이나 3, 4년에 한번 벼를 심을 수 있을 정도의 침수지대의 논이 아니라 한발이나홍수에 구애됨이 없이 단위수확량이 높은 일등호답을 배분해 주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중앙정부가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반론은 지방세원의 확충을 위한 개혁은 세원의 편재로 지방단체간에 손해와 이득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세나 국고 보조금의 일부를 폐지해서 지방재원을 확충한다고 하는 개혁은 경제력이 강한 단체에서는도움이 되지만, 경제력이 약한 단체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단체간의 빈부 격차를 더욱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재원배분을 하지 않겠다는 구실에 불과하고 그 의지만 확고하다면 그러한 문제점은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과세주권에 기초한 재원조달의 재량의 폭을 더욱 넓혀주어야 한다. 즉 중요한 세목에 대해서 세율을 조정할 수 있는 초과과세의 범위를 확대하고 또 일정한 요건하에 특수한 세원에 대해 독자적으로 과세할 수 있는 법정외 세목의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경제 전체의 교란을 가져올 만한 문제점이 있는 것이 아니면 가급적 세수효과가 큰 세원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과세권을 허가해 주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지방자치단체의 과세자주권의 확대에 대해서도 중앙정부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없지 않은 것 같다. 이것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불신감이 주된 요인인 것 같다. 징세능력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한다면 마치 어린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아 이를 남용할 소지가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솔직히 말해 중앙정부의 우월감과 지방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그동안 수없이 지방분권 논의가 있어 왔지만 지방재정개혁에 대해서는 정확한 인식과 그에 기초한 구체적인 개혁안의 제시가 이루어지지 못했다.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원의 지방으로의 합리적인 이양은 중앙정부의 위상의 축소와 손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고하고 안정된기반을 구축하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그렇게도 개혁을 외쳤던 국민의 정부였는데도 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 기초적인 작업도 이룩하지 못했을까. 남은 기간에 방향제시만이라도설정해 주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이상희 전대구시장 영광학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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