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문경 신욱현씨

입력 2002-10-14 14:17:00

어느 분야든 자기 일에 미친 사람이 있기 마련.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야에서 열정 하나만으로 앞만 보고 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하다.

신욱현(42.경북 문경시 동로면)씨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다. 토종닭 육종과 보급에 남다른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그는 주변의 손사래에도 아랑곳없이 토종닭과 한판 씨름을 벌이고 있다. 30, 40년전만해도 도시든 시골이든 흔히 볼 수 있었던 토종닭. 하지만 지금은 외래종에 밀려 자취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 이런 토종닭을 되살려내 질 좋은 우리 먹을거리를 내놓으려는 그에게 하루 해는 짧기만하다.

문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씨는 벼농사는 물론 고추농사, 담배농사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농사라면 이력이 난 농부다. 틈틈이 흑염소 등을 키워오다 본격적으로 목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대 초. 평소 꿈꿔왔던 토종동물농장을 만들기 위해 문경시 동로면 해발 500m 산비탈 7만5천평을 사들여 흑염소 등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5년 문경시 농업기술센터로부터 토종닭 육성 사업자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이제 토종닭은 그에게 전부가 되다시피했다.

의욕을 갖고 시작했지만 막상 토종닭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경북, 충북, 강원도 등 여러 지역에서 토종닭을 키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자문도 구했지만 모두 가능성이 없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신씨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경북도 축산기술연구소가 80년대초 도내 각 지역에서 수집해 폐쇄군으로 혈통보존하고 있던 경북종 재래닭을 가져다 키우기 시작했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토종닭 사육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일이었다. 첫 해는 부화한 닭의 상태가 좋았지만 그 이듬해부터 근친교배탓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는 등 어려움에 봉착했다. 궁리끝에 문경 골짝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재래토종닭을 찾아내 교배시키는 등 갖가지 노력이 뒤따라야 했다.

우여곡절을 겪고 수년 간에 걸친 실험 끝에 누가 봐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외모를 가진 토종닭을 고정하기에 이르렀다. 뜻을 같이하는 몇몇 사육농가들이 동참하면서 재래토종닭을연구하는 '고려닭연구회'를 결성해 정보를 교환하고 종계를 보급하기 시작, 대량 사육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지난 2000년 1월 (주)고려닭을 창업해 토종닭 상품화에 나섰지만 많은 문제가 뒤따랐다.

무엇보다 토종닭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상인들이 토종닭이라고 속여 파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의 불신이 깊었다. 이를 극복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해마다 전국 각지의 축산 상품을 선보이는 '전국우리축산물브랜드전'에 참가해 고려닭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루이틀안에 이뤄질 일은아니었지만 깊은 불신은 쉬 해소되지 않았다. "토종닭은 일반 육계 품종에 비해 성장속도가 느려요. 일반 품종은 보통 부화후 30~35일이면 시중에 내놓을 수 있지만 토종은 5~6개월 걸려야 겨우 먹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합니다".

언뜻보기에 경쟁력이 없어보이지만 토종닭은 부가가치가 높은 우리 먹을거리다. 타 품종에 비해 육질에 지방질이 적고 담백하며 쫄깃쫄깃하면서 맛이 일품. 일반 품종과의 비교자체가 안될 만큼 맛이 뛰어나다. 일반 육계에 비해 5배 가량 비싸도 없어 못 팔 정도. 문제는 과연 진짜 토종닭이냐 하는 점이다.

토종닭이라고 속여 팔아온 그릇된 상혼때문에 진정한 토종닭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신씨는 이런 점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신씨는 지난해 12월 재래토종닭 업계 최초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닭고기 품질 인증을 받은데 이어 지난 3월 특허청에 '고려닭' 상표등록도마쳐 상품화에 박차를 가했다.

사업화도 문제였다. 자금이 부족해 토종닭을 가공해 판매할 수 있는 시설조차 없었고, 판로도 막막했다. 몇 년째 가시적인 성과가 없자 회원농가들이 하나둘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신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 년동안 들인 공도 공이지만 꿈이 실현되는 단계에서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사업계획서를 들고 은행과 관청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니면서 설득한 끝에 조금씩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경대학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으로 선정돼 사무실도 내고 판로 개척에 부심했다. 조금씩 '고려닭'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거래처가 늘기 시작했고, 어렵게 확보한 자금으로 문경시 신기공단내 토종닭 사육업체의 첫 직영 가공공장도 착공, 다음달 중 문을 열 예정이다.

신씨는 현재 시제품 단계이지만 공장 가동과 함께 본격적으로 틈새시장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2월까지 10여개 회원농가에서 사육한 월 3~4천 마리를 출하하고, 차츰 1만 마리로 늘려나간다는게 신씨의 구상. 대구와 경북, 충북지역으로 계약사육농가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계약사육농가는 일반 육계에 비해 10배나 높은 수준인 마리당 3천원의 사육비를 보장받기 때문에 농가 소득증대에도 큰 몫을 할 전망이다.

사육단계에서부터 체계적인 브랜드화에 힘을 쏟아 외국수출도 구상중이라는 신씨는 앞으로 우리 곡물을 미생물로 발효한 특수사료를 개발하는 등 토종닭 육질 향상에 모든 노력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너른 이레농장에는 4만수의 토종 고려닭이 우리에 갇혀 있지 않고 제 멋대로 날갯짓을 치고 쫓아다니며 커가고 있다. 신토불이, 옹골찬 토종닭을 향한 그의 도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