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률 높아진 올 '취업전쟁'

입력 2002-10-10 14:34:00

대구 ㄱ대 인문사회계열 한 학과를 내년초 졸업하는 박모(26.여)씨는 요즘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올 가을 기업 채용이 크게 늘었다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일자리는 없다는 것. 토익 성적이 850점을 넘나들고 전학년 평균 학과성적이 3.7이나 되지만 벌써 5번째 낙방의 쓴 잔을 마셨다고 했다.

"대기업 몇 곳에 인터넷으로 원서를 내봤지만 연락이 없습니다. 영어공부는 물론 나름대로 꼼꼼히 취업을 준비했는데도 번번이 떨어지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다수 과 친구들이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학습지 강사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자고 합니다".

올 하반기 대졸자 취업은 채용규모 증가에도 불구하고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됐다. 경쟁이 가열되자 기업들은 응시기회마저 제한하는 경향을 보여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늘어난 일자리=대다수 취업정보 업체의 지난해 대비 올 가을 대졸자 채용규모 증가세 추측치는 30% 정도. 지난해보다 30% 정도의 일자리가 더 생겨난다는 것이다.'인쿠르트'에 따르면 전기.전자업체 48개사가 4천421명, 금융업계가 지난해 하반기보다 48% 가량 늘어난 1천575명, 유통.외식업계가 최소 3천여명의 인력을 모집할 것으로 보인다.

특소세 인하 등 여파로 호황을 누리는 자동차 업계에선 현대.기아차가 600여명을 채용하는 것을 비롯, 현대모비스와 르노삼성자동차가 100~200명 가량 신규인력을 뽑을 것으로 인쿠르트는 집계했다.

보험업계는 이달부터 연말까지 150여명의 경력사원 외에 총 350명 정도의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해상은 50∼70명 정도의 신규 대졸사원을 뽑기로 하고 15일까지 서류를 접수하고 있으며, 50명을 채용하는 동부화재도 16일까지 입사원서를 받는다.

LG화재(30여명)가 17일까지, 동양화재(20∼30명)는 18일까지 각각 대졸 신규직원 채용을 실시한다. 제일화재는 이달 말부터 내달초까지 20∼30명 정도, 교보자동차보험은 연말까지 매월 10∼15명의 신입직원을 뽑을 계획이다. 푸르덴셜은 30명 정도를 선발키로 하고 전형절차를 진행 중이며 SK생명은 그룹채용을 통해 20명 정도를 충원키로 했다.

◇그룹 공채도 되살아나=외환위기 이후 자취를 감췄던 그룹 공채도 활기를 띠어 한화.금호.코오롱.효성 등도 최소 100명에서 300명까지 채용할 것으로 인쿠르트는 내다봤다. 동부그룹은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200명을 공채키로 하고 16일까지 계열사별로 접수한다.

지역에서는 대학생들의 최대 선호기업인 대구은행이 이달 40명을 모집한 뒤 다음달 여대생 60명을 추가 모집할 계획이다. 동아백화점은 다음달부터 12월까지 수십명의 대졸 및 전문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할 계획이고 개업 예정인 롯데백화점도 내년 1월쯤 판매사원 300명 정도를 뽑을 예정이어서 지역에서도 채용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인쿠르트 조성란(28) 대리는 "외환위기 이후 신입 채용을 줄이고 경력 채용을 늘렸던 기업들도 올 가을에는 신입 채용 비율을 늘려 내년 2월 졸업생들에겐 모처럼 기회가 왔다"며 "지난해 말 전체 채용 예정인원의 70%까지 올라갔던 경력직 비율이 올 가을에는 30%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쟁률은 더 상승=이달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낸 국내 최대규모의 모 자동차 부품업체에는 100여명 모집에 무려 1만여명이 응시했다. 석.박사급 인재만 무려 1천명 이상이 몰렸다.

이처럼 경쟁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자 일부 업체는 아예 공개 공채방식 대신 특정 대학과 특정학과의 전학년 성적 우수자에게만 원서를 교부, 이들에게만 응시기회를 주는 제한 공채를 실시하고 있다.

이달 300여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모집한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경우, 채용 규모대비 2, 3배 정도의 원서만 특정학교에 보내 추천된 사람에 대해서만 응시기회를 줬다. 대구은행 경우도 40명의 신입사원 공채 때 원서는 240장만 만들어 일부 학교에 제한 교부했다. 금융권은 이미 절반 이상이 제한 공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방대 출신 여전히 불리=제한공채의 확산은 지방대생의 응시기회를 더욱 줄이는 결과를 빚고 있다. 대구은행조차 지역 기업이면서도 수도권 대학에 전체 원서의 30% 가량을 교부했다. 경북대 취업장학과 김기동씨는 "대기업 채용 규모는 늘었지만 수도권 대학에만 문을 개방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채용정보 업체인 '잡링크'가 최근 지방대 4학년 재학생 및 지방대를 졸업한 취업 준비생 1천3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방대 출신으로 차별을 경험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76.7%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58.5%는 '대기업', 20.6%는 '중소 및 벤처기업', 17.9%는 '공기업'이 그랬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35.4%는 '올 하반기 취업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46.7%는 '매우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고 답변, 지방대생들의 체감 취업난은 경기 회복과 별개 문제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달라진 취업 조건=채용 규모가 회복되고 있다는 분석은 있지만 채용 방식은 외환위기 이전과 전혀 딴판이다. 신문광고 등을 통한 채용공고가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것. 인터넷을 통해 공고하고 원서 접수도 인터넷으로만 받는 기업이 대다수이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채용 공고도 못보게 생긴 셈.

'패자부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점도 구직자들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기업들이 한편으론 인터넷 채용을 통해 원서를 많이 받는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상당수 대기업들이 추천을 통한 제한공채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학과 성적이 좋지않은 학생들에게는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인사그룹 최용호(40) 차장은 "4학년 때 잠시 취업준비를 해서 취업에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학과 성적과 영어성적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성과를 쌓은 사람에게만 지원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취업 자세=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에게까지 경력이 요구된다는 것도 최근 채용 기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화이다. '이 회사에 지원키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느냐'는 것이 그것. 때문에 서울 지역에서는 대학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업 실무지식 수강 과정이 이미 활성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묻지마 취업'이 많아져 이직률이 급증하자 서류전형은 물론 면접에서 '이직 가능성'을 감지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고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환기했다. 지원 기업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원동기를 명확히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같은 이유 때문에 면접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면접이 채용 성패를 좌우할만큼 강화됐다는 것. '지방대학' 출신이거나 전공이 기업의 흥미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면접을 잘 본다면 역전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대구은행 인사팀 이동준(39) 차장은 "기업들은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끼'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며 "지원자들은 면접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조(50) 영남대 취업정보실장은 "저학년 때부터 취업 마인드를 가지고 학점관리는 물론 외국어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며 "올 가을 취업 전선에 나서는 졸업예정자들은 사실상 면접에 사활을 건다는 각오로 대비해야 하며 적당히 대답하겠다는 자세로는 결코 취업에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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