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대구시 서구 내당동에 사는 40대 남자가 가족 3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물.옵션투자 실패가 낳은 한가족의 몰살이라는 비극을 몰고왔지만 선물옵션시장의 도박성은 단순히 이 가정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물주식투자에서 수천만원의 손실을 본 직장인 ㄱ(38)씨는 평소 친분이 있는 대구지역 모 증권사 직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난달 초 예금 1억원을 인출해 옵션 투자를 시작했다. ㄱ씨는 콜 매수 포지션(주가 상승시 수익 발생)에 1억원을 투자했지만 주가가급락하는 바람에 불과 3일만에 7천여만원을 날렸다. 증권사 직원은 "그 뒤로 ㄱ씨는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대구지역의 모 가공식품업체 50대 사장 ㅅ씨는 옵션투자 때문에 회삿일이 뒷전이 됐다. 현물 주식 투자로 수억원의 손해를본 그는 옵션투자로 원금을 만회하겠다며 회사 경영을 부인에게 맡긴 채 사무실 한켠에 컴퓨터 2대를 놓고 옵션 단타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옵션투자로 십 수 억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불고 있는 옵션 바람은 정당한 땀의 댓가없이 대박의 환상을 쫓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극명히 보여준다.한번의 배팅으로 수백배의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오늘도 많은 투자자들이 복권을 사듯 옵션 배팅에 열중하다가 결국 가산을 탕진하고 심지어는 목숨마저 끊는 일마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교보증권 대구서지점 최병희 지점장은 "선물.옵션은 현물주식투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주가변동성이 심한 위험한 투자기법인데도현물주식에서 사실상 낙오한 투자자들이 원금을 만회해 보겠다며 무모하게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증시에서 불고 있는 선물.옵션 열풍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한국의 옵션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부동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6월말 현재 세계 2위인 프랑스 옵션시장보다 거래 규모가 17.5배나 된다. 일평균 거래량과 거래대금도 6월말 현재 지난 97년 개설 당시보다 200여배 급증했다.
현물시장의 보조시장이어야 할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시장이 현물시장보다 8배나 커지는 기형적인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주식을 투자로 보지 않고 투기로 접근하는 한국 투자자들의 대박 신드롬이 낳은 병폐다.
선물.옵션시장은 따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도 있는 철저한 '제로섬(Zero Sum) 게임'으로서 자금력과 시장 장악력에서 개인투자자로서는 외인,기관, 큰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뢰밭 같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선물.옵션 투자에 매달리는 것은 엄청난 가격 변동성에 따른 중독성 때문이다.
실제로 전업투자자인 ㅊ씨(36.여.대구시북구)의 경우 지난달 23일 1계약에 3만2천원인 콜 매수 옵션을 1천만원 투자했다가 옵션가격이 1천원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10여일만에 997만원을 날리기도 했다.
옵션투자자 박모(43.대구시 수성구 두산동)씨는 "옵션을 하게 되면 단 한 순간도 시세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보다 더한 도박이 없다"고 했다."있는대로 돈을 다 끌어 쓰고 탕진할 때까지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대박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멈출 수 없다"이라고 털어놨다.
사이버애널리스트 이선달(대구시수성구지산동)씨는 "옵션투자는 칼자루를 쥔 사람(시장주도집단)이 휘두르는 칼날을 맨 손으로 잡고 이기겠다는 무모한 싸움"이라며 "일반인에게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일반투자자의 옵션시장 진입 장벽을 하루빨리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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