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직전 대북 통신감청부대가 북한의 도발가능성 등 이상징후를 경고한 보고서 내용중 일부가 당시 김동신 국방장관의 지시로 삭제됐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경위서가 공개되면서 국방부의 특별조사가 본격화되고있다.
국방부 특별조사단(단장 김승광 육군중장)은 이번 주중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완료한다는 방침이어서 '삭제 지시'가 사실일 경우 파문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고내용 무엇이었나=대북 통신감청부대인 5679부대(당시 부대장 한철용소장)는 서해교전 이전인 지난 6월13일 일일보고서인 '부대의견'을 상부에 올렸다.
이 보고서는 이틀 연속 북 경비정의 NLL(서해 북방한계선) 침범 의도와 관련해 첫째 북 해군의 전투검열 판정과 관련된 침범, 둘째 월드컵 및 국회의원 재보선과 관련한 한국내 긴장고조 의도 배제불가, 셋째 우리 해군 작전활동 탐지 의도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철용 당시 부대장은 주장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합참 정보본부를 거쳐 김동신 당시 장관에게 보고된 이후 "둘째와 셋째 항목을 삭제하고 전파하라"는 김 전 장관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6일 공개된 5679부대 정보단장 윤영삼 대령의 경위서는 6월14일 오전 9, 10시 사이 정형진 합참 정보융합처장으로부터 "장관께서 3가지 판단중 2, 3번판단 내용은 삭제하고 전파하라고 지시했다"고 적고 있다.
이 경위서는 그로부터 한달 이상 지난 7월18일 작성됐으며, 한 전 부대장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 증거물로 활용하기 위해 윤 대령에게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확인은 군의 특별조사를 거쳐야 하겠지만, 일선 부대에 배포된 '블랙 북'(1일 정보보고서)에는 둘째, 셋째 항목이 삭제된 반면, 단순침범 가능성이 추가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삭제 및 추가 경위에 대해 조사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삭제지시' 있었나=5679부대의 '부대의견'과 합참 정보본부의 블랙 북이 이렇게 차이가 있다면 누가 삭제를 지시하고 단순침범 가능성을 추가했을까.
한 전 부대장은 지난 4일 국회 국방위 국감에서 "김동신 장관이 삭제를 지시했다"고 주장했고, 윤 대령도 공개된 경위서에서 정형진 정보융합처장에게서 '장관이2, 3번째 항목을 삭제하고 전파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장관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김 전 장관에 따르면, 6월13일 정형진 정보융합처장의 관련 첩보보고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항목을 삭제해 전파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김 전 장관은 정보융합처장이 단순침범 가능성과 함께 5679부대가 지적한 3가지항목 등 모두 4가지 가능성을 보고하자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는다는 얘기냐. 정보본부에서 확실하게 정리해 다시 보고하라"고 질책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준 국방장관도 4일 국감 답변을 통해 "당시 보고를 받은 장관은 '보고내용이 단순침범에서 예상되는 모든 가능성을 열거하고 있어 받아보는 부대에 혼란을 줄 수 있겠다'며 '정보본부에서 확실하게 정리해 다시 보고하라'고 언급했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이 삭제지시를 했을 개연성도 있다. 그러나 정보본부는 기본적으로 합참의장이 관장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군 고위관계자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장관이 첩보보고를 받을 때 '이것은 넣고 저것은 빼라'고 말하지 않는다"며 "합참 정보본부에서 영상정보 등 다른 정보와 비교하면서 5679부대의 첩보분석을 제외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정보융합처장이 권영재 정보본부장 등과의 협의를 통해 '장관의 지시'를 내세워 5679부대에 삭제를 지시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김 전 장관은 정보융합처장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니 확실히 정리해 다시 보고하라'고 했는데, 정보융합처장은 장관의 의도를 '넘겨 짚어' 단순침범 쪽으로 정리하라는 식으로 잘못 받아들이고 삭제를 지시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군 수뇌부가 북한의 이상징후를 사전에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장병 6명 전사 등 비극을 낳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6월27일 북 이상징후' 보고 여부=5679부대는 또 서해교전 이틀전인 6월27일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결정적 징후를 포착한 부분도 조사의 핵심대목이다.
적어도 이 때라도 제대로 정보판단을 했더라면, 사전 군사대비 태세를 확실하게 강화함으로써 서해교전이라는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대해 한철용 전 부대장은 "6월27일에도 북한의 도발이 임박했음을 알 수있는 결정적 첩보를 탐지, 상급부대인 합참 정보본부에 보고했으나 정보본부가 '블랙 북'에는 이를 누락한 채 일선 부대에 배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보본부와 기무사 등은 "당시 한 부대장이 북한의 도발이 임박했다는 결정적 첩보를 포착하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누락시켰다"며 "이 첩보는 6월13일첩보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고 쉽게 북의 도발을 판단할 수 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와함께 군 일각에서는 대북 통신감청의 경우 북한측에서 우리측을 교란시키기 위해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리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에, 통신감청 내용을 액면그대로 '정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측면도 있음을 지적했다.
◇국방부 특별조사 전망=이번 사안의 경우 무엇보다 전임 국방장관과 합참 정보본부장, 정보융합처장, 합참의장, 5679부대, 기무사 등이 관계 당사자들인데다,이미 국감에서 여야간 논란을 빚는 등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상황이어서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과연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낼 수 있을 지에 군 안팎의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이번 논란을 통해 '극비 부대'인 대북 통신감청부대의 활동상황과 첩보 보고 및 융합, 전파 과정이 만천하에 공개됨과 더불어 군기강이 흐트러지고 있는 상황도 앞으로 국방운영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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