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문학의 터전은 대구입니다. 구상 시인은 한국 전시문단의 중심이자 대구문화의 뿌리였던 향촌동 시대의 주역이었지요".
4일 오후 칠곡 왜관에서 열린 구상문학관 개관 기념식에서 '구상 시인의 문학과 대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윤장근 죽순문학회장(71.소설가.사진)은 시인과 대구와의 만남을 운명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구상 시인의 대구생활은 1951년에 시작됐지만 대구와의 인연은 사실상 3년전인 1948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대구 달성공원에서 거행된 상화시비 제막식에 서울 문인 대표로 참석, 이윤수 시인 등과 친교를 맺으며 죽순문학에도 관여하게 됐다는 것. 이듬해에는 남로당으로 몰린 향토의 시조시인 이호우 선생 구명을 위해 다시 내려오면서 대구의 문인들과 더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피난을 와서 왜관에 정착한 시인은 1953년까지 대구에서 국방부가 위촉한 승리일보의 주간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효성여대(대구가톨릭대) 교수로 강단에 서며 최선영.박옥생.이일향 시인 등 숱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피난시절 문단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던 시인은 가난하고 외로운 문인들에게는 넉넉한 언덕이기도 했습니다". 윤회장은 귀공자다운 용모에다 부인의 병원 개업으로 경제력도 있었으며, 뛰어난 문학적 역량에다 성품이 호방했던 '향촌동 백작'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문단 안팎을 관류하는 특유의 친화력에다, 박정희 전대통령.이종찬 장군 등 군부의 인맥도 두터웠지만 애시당초 감투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1951년 첫시집 '구상'과 민주항쟁의 불씨를 지핀 '민주고발'(1953년) 그리고 전쟁에 짓밟힌 인간성을 증언.고발한 시집 '초토의 시'(1956년)를 출간한 곳도 다름아닌 대구였다. 시집의 표지화를 그린 고향 친구 화가 이중섭과 동고동락한 곳 또한 대구와 왜관이었다.
국방부의 지원으로 '전선문학'이란 잡지를 발간해 궁핍한 문인들의 생계를 도왔던 것도 대구에서의 일이다. "감나무집.석류나무집 등에서 숱한 문인묵객들과 어울리며 뿌렸던 전설같은 일화가 그 얼마입니까. 시인이 서울로 올라간 것은 1960년이었지요".
윤 회장은 '강'이란 주제의 시를 보면 육신과 영혼의 전생(부활)을 통해 민족과 역사 안으로 가 다다르고자하는 시인의 문학정신을 읽을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예나 지금이나 거실과 집필공간을 관수재(觀水齋)라 했듯, 시인은 강을 좋아했고 또 평생 강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고향인 원산의 적전강에서 본적지로 정한 왜관의 낙동강, 그리고 지금의 한강변까지….
시인은 강을 진리의 완성을 위한 수도장으로 여겼다. 순간과 영원을 잇는, 흘러가지만 영원한 강을 통해 시인은 무상(無常)을 읽고 불멸불변의 생명과 진리를 시적으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름아닌 관수세심(觀水洗心).
윤 회장은 구상 시인의 문학적.인간적 본질은 '문학과 인간의 합일'에 있음을 거듭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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