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가위 달빛은 유난히 찬란하다. 달 곁에 있는 별들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휘황찬란하다. 지난 여름의 태풍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일까. 인재라 일컬어지는 피해만 없었더라면 올해의 추수 또한 풍성했으리라.
이 땅에 무덥고 따가운 여름은 곡식과 과일을 영글게 하고, 살을 에는 겨울은 튼튼한 새싹을 길러낸다. 뚜렷한 계절을 익히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땅의 사람들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법이리라.
그래서인가? 한국의 아이들은 "제발! 철 좀 들어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듣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부모들은 "제발! 철 좀 들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좥철'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철은 말 그대로 좥계절'을 의미한다.
다만 그 뜻을 헤아리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철들어라는 말은 계절을 알아보고 계절에 맞게 살라는 뜻이다. 다른 문화권의 아이들이 주로 듣는 말은 착하게 살아라 내지는 용감하라는 말이다. 유독 우리 민족만이 교육의 지상목표를 계절에 맞게 사는 데에 두고 있다. 왜 철 드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가?
다음으로 이 땅의 아이들은 "제발 사람 좀 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 말도 일상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다만 철학적으로 인간의 인간됨을 고찰하는 것이 상례이다.
즉 일상적 훈계가 아니라 철학적 테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거듭하여 사람이 되라는 것인가? 여기에는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으리라. 결국 사람은 끊임없이사람 다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훈계이다.
누가 우리 민족에게 철학이 없다고 하는가? 아무런 철학도 없이 어떻게 5천년의 역사를 이어온다는 말인가? 우연이나 행운에 의한 역사는 100년을넘기지 못한다.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과거의 생각이 아니라 현재의 생각이다. 중국 대륙을 지배한 모든 민족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우리의 역사를 이렇게 해석한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힘이 없어서 중원을 정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손만대의 보존과 부흥을 위해서 끝까지 중원 정복의 유혹을 참아냈을 것이다. 힘이 있을 때도 널리 퍼져나가 그 순수한 씨앗을 잃어버리기보다는 한반도에 머물러 올곧은 삶의 방식을 지키려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 조상들은 민족의 철학을 책으로 남기기보다는 무의식에 심어 놓기를 원했던 것 같다. 철이라는 말이 일상적 언어로 습관화된 것을 보면, 모든 뿌리 깊은 민속놀이가 계절에 맞춰진 것을 보면, 철들어라는 말은 아주 오래된 훈계요,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철학임에 틀림없다.
결국 철이 들어야 사람이 된다는 생각은 우리 민족의 입에 배고 귀에 익은 무의식의 철학이다. 계절을 알아보고 계절에 맞게 살아야 사람이 된다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철학이다. 어쩌면 신라시대의 화랑들도 철들기 위해서 온 산하를 누비며 다녔을 것이다.
고구려의 왕자들도 이 말을 들으며 사냥터로나갔을 것이다. 나아가 신분과 계급을 넘어서서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위치에서 철이 들어야 사람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철이 들고 언제 사람이 되는가?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한다면, 철이 든 개구리다. 사람도 스스로 철없던 시절을 상기하면서 비로소 철들기 시작하는 것같다. 부모가 철들어라고 하면서도 계절의 법칙을 무시하고 산다면, 어찌 자식이 사람이 되겠는가? 부모가 사람이 되라고 하면서도 사람을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과연 자식이 철들겠는가?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할 가을이 깊어가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려면 내가 먼저 철든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하겠는가? 아이들이 나를 철든 사람이 되게 한다. 거둘 것 없는 가을을 맞이한 사람은 아끼고 모을 줄 알아야 철이 들 것이다. 넘치는 가을을 맞이한 사람은 나누고 베풀줄 알아야 철이 들 것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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