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 수리전문가 김영희씨

입력 2002-09-23 14:01:00

단청 문화재 수리 기술자 김영희(52)씨. 쉽게 이야기를 꺼내자면 그는 문화재로 등록된 건축물의 단청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전국의 사찰이나 암자가 그의 일터. 그는 또 대구시 수성구에 작업실을 열어놓고 민화를 그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호텔 연회장의 장식 병풍이나 외국인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리는 것들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 부처님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대구에 단청 문화재 수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예닐곱 명에 불과하다. 가르치는 곳도 없고 힘들게 배우려는 사람도 드물다. 김씨는 4년 간 매주 한두 차례씩 서울을 오르내리는 노력 끝에 1995년 이 자격증을 땄다. 문화재관리국 산하 전통 공예관에서 민화.단청.불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다. 제대로 그림을 배우고 생활방편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가톨릭 신자였던 김씨가 불화와 단청, 민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8년. 우연히 사찰 단청작업의 허드렛일을 할 기회를 가지면서부터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에게 그때까지 익혀온 그림은 주로 서양화. 그 무렵 불교로 개종한 그는 단청작업 허드렛일에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 길로 불화.단청.민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민화와 단청을 주로 하지만 제 인생의 목표는 제대로 된, 스스로 감동할 수 있는 불화를 그리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민화그리기와 단청 작업을 불화를 향한 연마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김씨는 부처님을 그리기 위해서는 기술연마뿐만 아니라 정신적 연마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여고생이었던 35년 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교사생활도 했다. 그리고 단청 기술자 국가 자격증을 획득한 것이 7년전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부처님을 그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부처님 그림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그림입니다. 그림 솜씨가 아니라 마음의 준비라고 할까요". 그는 자신이 가끔씩 그려보는 불화는 불화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그저 준비과정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김씨는 일정한 수련 없이 곧장 채색을 시도하는 요즘 대학의 수업방식에 대해서도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단순히 기술만 배워서는 안 되는데…".

김씨는 지금까지 많은 스승을 찾아다녔다. 때로는 지도를 받았고 문전박대도 당했다. 무엇인가 와 닿는 대가를 찾아 통사정도 해보았지만 채색법을 배울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를 박대한 스승들은 '불화 그리는 여자'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좋은 불화 한점 그리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김영희씨. 쉰을 넘긴 나이마저 잊은 듯 그는 좋은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 거듭 거듭 강조했다.

◇단청(丹靑)이란=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을 기본으로 색을 배색(配色), 천장 기둥 벽과 같은 건축의 가구부재(架構部材)에 여러 색깔로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는 것과 조형품, 공예품, 석조건축, 고분(古墳) 불화 동굴 등에 채화(彩畵)하는 경우 등 회(繪), 화(畵)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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