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가위-TV, 영화

입력 2002-09-19 14:00:00

추석연휴동안 무슨 영화를 볼까? 대구 극장가에는 갱영화, SF, 코믹조폭영화, 애정영화 등 비슷비슷한 영화에서부터, 작품성과 함께 생소한 소재를 다룬 볼 만한 영화가 골고루 차림표를 차렸다. 취향별로 권할 만한 영화를 소개한다.

▨애들과 함께 볼 만한 영화를 고른다면

이야기의 전개가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일단 눈이 즐거워야 한다. 그렇다면 블록버스터다. 황폐한 미래의 괴수와 게임안에 재림한 동화 주인공이 한판 초대형 액션을 펼친다.

'레인 오브 파이어'(reign of fire)는 괴물의 등장으로 인류가 위기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종말론적 SF영화. 익룡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지구는 황폐화되고, 극소수의 인류만이 살아남은 서기 2025년. 탱크와 헬리콥터 부대를 이끈 인간들은 유일한 수컷 익룡을 죽이기 위해 전투에 나선다.

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CG(컴퓨터그래픽)로 창조된 익룡. 익룡이 기괴한 도시를 비행하는 모습이나, 대포를 맞고 추락하는 장면, 인간과 익룡의 전투신은 스펙터클하다.풍부한 상상력을 갖췄다면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을 권할 만하다. 제작비 100억원을 넘는 한국형 블랙버스터영화. 장선우 감독의 선문답식 전개에 홀리지 않을 만한 관객들에게 맞다. 다만 큰 기대 없이 철저히 즐기는 자세로 봐야 후회나 실망이 없다.

자장면 배달원 주는 어느날 짝사랑하는 게임방 종업원과 꼭 닮은 성냥팔이 소녀로부터 우연히 라이터를 산다. 라이터에 적힌 전화번호를 통해 컴퓨터 게임'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접속한 주는 성냥팔이 소녀를 살리고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CG, 현란한 격투신, 독릭영화적인 신선한 세트와 등장인물을 보는 것은 여간 즐겁지 않다.그러나 영화적인 메시지는 난데없는 노랑나비와 금강경 염불소리에 다소 모호하게 묻혔다. 여전히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선택이다.

▨'심심해서' 영화나 한편 보고 싶다면

연휴가 따분해서 미칠 지경인 이들은 부담없는 영화가 어떨지. 부담없기로는 조폭이 딱이다. 다만 '원조 조폭'과 '조폭이 등장하는 코믹영화'는 좀 다르다.가문의 영광은 후자에 가깝다. "조폭영화를 왜 보니?"라는 핀잔을 무시할 만큼 재밌다. 조폭을 희화한 면은 여전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가상하다.CF의 여왕 김정은, 정준호 등 주연과 함께 유동근, 박근형, 성지루 등 든든한 조연들의 개성넘치는 연기가 배꼽잡는다.

"우리도 일류대 사위 좀 보자". 우연히 조폭 가문 '쓰리제이'의 금지옥엽 막내딸과 동침하게 된 일류대 출신 엘리트 대서(정준호 분). 가방끈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스리제이' 삼형제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협박과 회유로 결혼을 성사시키려 애쓴다. 엘리베이터 고장내기, 술값 해결해주기, 대서 여자친구에 잘생긴 남자 붙여주기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영화 속 김정은의 연기가 압권. 재밌는 영화에 이어 개성있는 코믹연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조폭집안의 사랑스런 막내딸로 그녀만한 연기자는 없을 듯하다.영화 개봉전부터 정치권이 먼저 선전에 나선 영화 '보스상륙작전'. 욕설과 주먹, 유머가 두서없이 난무하는 원조조폭영화다. 대선을 앞두고 조폭과 정치권의 불법자금 거래가 은밀하게 진행된다.

정계 진출을 노리는 무궁화파 보스 '왕발'은 정치권에 로비활동을 펼친다. 검찰은 조폭검거를 긴급회의를 소집하고작전명 '보스상륙작전'을 편다. 작전의 정체는 최고의 '나가요'출신을 고용해 룸살롱을 개업한 조폭소탕. 원조조폭영화답게 재미가 별로라는 특징이 있다.

▨잔잔한 혹은 격렬한 감동을 원한다면

올 하반기 상영작 중 가장 '강추'할 만한 영화는 단연 '오아시스'. 최근 베니스영화제 대상과 신인상을 수상한 이후, 꾸준히 관객이 모여들고 있다.산만하기 짝이 없는데다 사람값 못하는 전과 3범의 종두(설경구 분)가 출감한 날. 가족들은 연락도 없이 집을 옮기고,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는다.

그는 형의 뺑소니사고를 대신 덮어쓰고, 피해자의 딸 '공주'(문소리 분)를 찾아간다. 공주는 전신마비장애인.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 이들 사이에 오아시스같은사랑이 싹틀줄은.

'지루하다' '어둡다' '답답하다'는 일부의 불평을 일축할 만큼 설경구와 문소리가 보여주는 연기는 잔잔하면서 압권이다. 공주가 무서워한다는나무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경찰에 쫓기면서도 나무가지를 잘라주는 장면은 콧등이 찡하다.

영화 '로드 투 퍼디션'은 갱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진한 부성애를 담고 있는 가족주의 영화다. 톰 행크스와 폴 뉴먼, 주드 로의 호연이 돋보인다.1931년 시카고. 갱 '마이클'(톰 행크스 분)은 마피아 보스 '존 루니'(폴 뉴먼 분)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있으며, 그의 친 아들 '코너'와는 오랜 친구다.마이클은 '죽음의 천사'라 불리며 모두가 벌벌 떨지만, 자신의 두아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다.

어느날 마이클의 큰아들이 우연히 조직의 살해장면을 목격하고, 코너는 설리번의 아내와 막내아들을 살해한다. 설리번은 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퍼디션'에있는 처제의 집으로 향하면서 조직에 복수를 결심한다.

영화제목의 '퍼디션(pedition)'은 동네이름이기도 하지만, '파멸에 이르는 길'이란 뜻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예고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돋보이지만, 영화 내내 지나치게 진중한 가족주의 성향이 부담스러운 느낌.

▨연애소설

이런 영화를 '비릿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차태현, 이은주, 손예진 등 젊은 청춘스타들이 등장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신세대 남녀들간의 새로운 삼각스토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진찍기를 즐기는 지환(차태현 분)은 손님으로 온 수인 (손예진)에게 첫눈에 반해 마음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하지만수인의 단짝 친구 경희(이은주 분)와는 친구로 지내기로 약속한다. 셋이 함께 어울려 다니며 즐거우 시간을 보내던 중 지환의 관심은 점점 수인보다 경희에게 기운다.

세사람이 함께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키스를 나누게 된 지환과 경희는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서먹해지고, 셋의 우정은 얼마못가 끝이나고 만다. 그로부터 5년 후 지환에게 발신인 불명의 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다소 닭살이 돋는 연애소설같은 스토리에 예쁘게 포장한 로맨틱 영화. 그러나 배우들의 맑고 순수한 삼각 연애담은 별로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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