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들 '우울한 명절'

입력 2002-09-18 16:17:00

바닥을 헤매는 지역경기에다 태풍에 따른 수해 등으로 수만명의 지역 외국인 근로자들이 유례없이 썰렁한 추석을 맞고 있다.

추석 대목이면 어김없이 열리던 외국인 근로자 위안잔치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수재민에게 모든 관심이 쏠리면서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

90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대구 성서공단의 경우 올 추석엔 달랑 비누세트 하나씩만 지급됐다. 추석 위안잔치가 성대하게 개최돼 타국살이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달성공단, 서대구공단을 비롯 구미.포항공단 등 지역 다른 공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계획된 행사는 전혀 없다. 특히 이달초 불법체류자 집중단속으로 70여명이 적발돼 외국인 근로자들의 어깨는 더욱 움츠려 들 수 밖에 없는 실정.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실시된 불법체류 집중단속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외출, 모임 등이 크게 위축돼 이번 추석연휴는 명절 분위기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상담소는 2000년과 지난해엔 대구실내체육관, 대덕문화전당에서 스리랑카 민속 예술단을 초청, 대규모 위안행사를 벌여 큰 호응을 얻었지만 올해는 조촐한 다과회만 계획하고 있다.

성서공단 내 한 섬유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인 강가바하두(38)씨는 "올해는 수해 등 여러가지 악재들이 겹치면서 예전과 달리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며 "섭섭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는 했지만 눈에는 슬그머니 이슬이 맺혔다.

인도네시아인 까르조(26)씨는 "지난해는 고국의 가수들을 초청한 위안잔치가 열려 향수를 달랬으나 올해는 친구들끼리 파티를 열어 추석잔치를 대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성서지역 한 섬유업체 대표는 "경기가 나빠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추석 보너스를 지급못했다"며 "추석 다음날 근로자들을 집에 초청, 식사대접으로 때울 계획"이라고 어려운 사정을 털어놨다.

외국인노동상담소 김경태 목사는 "일부 업체에서는 연휴기간에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며 "산업일꾼으로서 나름대로 몫을 해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배려가 아쉽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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