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상봉단 삼일포 나들이

입력 2002-09-18 15:54:00

○...6·25 전쟁때 남쪽으로 내려온 주도성(80)씨는 북측 막내딸 혜옥(56)씨와 삼일포를 다정히 거닐며 반세기동안 못 나눴던 부녀의 정을 만끽했다.부녀 곁에는 이번 상봉행사에서 할아버지와 첫 만남을 가진 외손녀 김성희(32)씨가 동행, 어머니 곁에서 외할아버지를 부축했다.세 시간 가량 진행된 삼일포 참관 상봉 내내 50여년간 떨어져 있었던 부녀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전날 첫 상봉때 흥분으로 상기됐던 부녀의 표정은 이날 오후에는 어느덧 밝아져 있었다.주씨는 남쪽으로 넘어오기 전 북한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며 간간이 웃음을 머금기도 했다.딸 혜옥씨가 "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셔서 빨리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만나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주씨는 "맞아, 통일이 빨리 돼야 할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삼일포 참관상봉에 나선 김혜연(93) 할아버지는 북측 아내인 박종정(93)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운 채 아들 인식(66), 영식(63), 례식(57)씨, 딸 현식(60·여), 명식(55·여)씨에 둘러싸여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가족들과의 만남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김

씨 일행과 동행한 북측 의료진들은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발이 퉁퉁 부었다고 걱정하시더라"며 심근경색을 앓고 있는 김 할아버지의 혈압과 건강상태를 일일이 체크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김 할아버지의 막내딸 명식씨는 "아버지 통일돼서 여기 있음 얼마나 좋간. 통일돼서 동생들이랑 다시 오자우요"라며 후일을 기약했다.

○...남측의 박창규(77) 할아버지는 북측의 아내 김순득(76) 할머니와 딸 흉녀(56)씨와 다정히 손을 잡은 채 삼일포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박 할아버지가 "삼일포를 보니, 우리 고향 황해도 웅진이 생각나는구려"라고 말하자, 김 할머니는 "전쟁때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당신 먼저 가라고 한 게 못내 한이 됩네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박씨의 딸 흉녀씨는 "아버지, 엄마 좀 꼭 안아줘요", "엄마, 엄마도 가깝게 좀 서보라우요"라며 다정한 부모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분주한 모습이었다.박 할아버지가 "할멈, 오래 살아서 통일되면 꼭 만납시다"라며 김 할머니를 꼭 끌어안자, 할머니는 "영감도 오래 사셔야 해요. 통일돼서 꼭 만나야지요"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68년 동해에서 조업을 하던 중 납북됐던 아들 정장백(56)씨를 극적으로 만난 이명복 할머니(80·여)는 삼일포 나들이 내내 아들의 손을 꼭 쥔 채 놓지 않았다.이 할머니는 "살아서 너를 만나니 너무 좋다"면서 "손자와 며느리까지 봤으니, 내가 말년 복은 있는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장백씨도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어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직접 뵈니 불효의 짐이 조금 덜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이 할머니는 북측 며느리 윤명숙(48)씨가 준비해 온 다과와 음료수를 들면서 "경치가 참 좋다"며 "이래서 금강산을 명산이라 하는구나"라며 감탄했다.

며느리 명숙씨는 "어머님이 많이 마르셨지만 목소리도 또렷하시고 걸음도 잘 걸으셔서 다행"이라고 말했다.이 할머니는 손자 남진(18)군에게 "너는 얼굴을 다시 보니 갸름한 게 아비랑 똑같다"면서 얼굴을 어루만졌다.이 할머니가 이어 아들을 바라보며 "매일 만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이라고 아쉬워하자, 장백씨는 고개를 떨구었다.

○...6·25 전쟁통에 헤어졌던 남편과의 애틋한 정을 잊지 못해 50여년간 수절하며 살아온 조돈화(73·여)씨는 50여년만에 만난 북측 남편 성태용(71)씨의 손을 꼭붙잡았다.

금강산의 명소 삼일포 주변을 남편과 함께 거닐던 돈화씨는 "경치가 참좋네요. 이래서 사람들이 금강산 금강산 하는거구나"라며 "이거 하나드셔봐요"라고 남편에게 정성스레 깎은 사과를 권했다.남편 태용씨는 아내의 다정함에 지난 반세기간의 절망과 슬픔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남측 최고령자인 정제원(94) 할아버지는 아들 동인(56)씨의 부축을 받으며 삼일포에 도착하자마자 "50년전엔 공원이 있었는데...해당화가 만발한 공원은 어딨노"라며 삼일포에서의 옛 추억을 되새겼다.아들 동인씨는 최근 교통사고로 부상당한 아버지의 퉁퉁부은 한쪽 발목을 한동안 안쓰럽게 어루만지며 잠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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