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권력자와 미술(7)

입력 2002-09-18 14:21:00

'이순신 동상, 유관순 초상, 논개 초상, 안창호 동상, 민영환 동상…'의 공통점은 뭘까?혹자는 '일본에 항거해 싸운 지사들'이라는 정답을 내놓겠지만 틀린 얘기다. '친일파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게 정답이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지사 작품의 제작의뢰를 받고, 지금까지 공공장소에 버젓이 전시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아직 우리는 멀었구나'라는 생각은 지나친 자괴감일까.

참고로 이순신.안창호.민영환 동상은 친일작가 김경승이 만들었고, 유관순 초상은 월전 장우성, 논개 초상은 이당 김은호가 그렸다. 지금까지 화가가 부당한 권력에 탄압받고 억압받은 사례를 봐왔지만, 정반대로 화가가 권력을 좇아 해바라기 같은 삶은 산 경우가 어디 한두건이겠는가.재미있는 것은 미술계 인사들의 친일파들은 다른 분야에 비해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최남선 서정주 현제명 홍난파 등 문학.음악계 인사들의 친일행각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미술계에는 운보 김기창(1914~2001)의 친일행각이 조금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것도 지난해 1월 사망했을때 국내의 신문.방송에는 '농아작가' '불꽃같은 예술혼'이니 뭐니 해서 생전의 공적만 칭송했을 뿐 친일 행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예전 미술계에는 국민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의 스타가 많지 않은 편이었고, 이중섭 박수근(이들은 절대 친일파가 아니다)같은 스타 화가들도 불과 20여년전에야 부상했기 때문이다.

'화필보국 회화봉공(畵筆報國 繪畵奉公)'이란 구호를 높이들고 출세가도를 달렸던 친일파들은 해방후에도 학계와 미술계를 장악, '미술계의명망있는 인사'로 떵떵거리고 살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이 때문인지 몇년전 서울대의 한 미대교수가 월전 장우성, 장발, 노수현 등 친일파이자 해방직후의 서울대 미대 교수진을 비판하다 재임용에 탈락되기도 했다.

얼마전 화제를 몰고온 책 '미술본색(윤범모 지음)'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화가로 출세하기 위한 열가지 조건을나열하고 있는데 '역사의식을 버려라'를 그 첫번째로 꼽았다.

"미술에서 무슨 역사가 필요한가. 일제시대는 그시대 나름대로, 군사독재시절에는 그시절 나름대로 항상 권력의 품에 안겨 영화를 누린 작가들을 보라. 친일작가는 해방이후까지 장수하면서 미대교수로, 미술계의 지도자로 군림하면서 얼마나 큰소리를 쳤던가! 민족과 사회를 생각하는 그대, 결코 스타가 될 수 없다.그러니 역사의식 같은 것은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처박아라. 에헴!"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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